타자성과 유혹: 유혹의 성공은 ‘타자성’을 찾는데서 온다.
철학자 강신주는 <망각과 자유>라는 책에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뜻을 상대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거듭된 시도로 설명했다. 주인은 자신의 제안에 화를 내는 원숭이를 통해 타자성을 경험한다. 자신과 같지 않음,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당혹감은 판단 중지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주인은 새로운 제안을 하고 이번에는 원숭이들의 기쁨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자가 해석하는 조삼모사는 상대를 속이고 조롱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여정에 가깝다. 유혹의 과정도 다르지 않다. 유혹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것 역시, 타자성의 발견이다.
상대가 나와 다름을 깨닫는 것.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대의 욕망을 탐험하고 고민하여 그가 내게 자발적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행위가 바로 유혹이다. 나의 즐거움과 너의 즐거움이 만나는 자리를 고민하고, 어느 순간 우리의 즐거움이 부쩍 가까워진 것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은 유혹의 가장 큰 보상이다.
물론, 타자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은 두렵고도 지난한 과정이 되기도 한다. 거부당할까 두려워 도망가기도 하고 공격적 태도로 미리 무장하기도 한다. 유혹은 이와 같은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유혹은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에서부터 온다. 우리가 서로에게 위험한 상대가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상대임을 설득하면서, 다가가고 또 상대를 자발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일이 유혹이다. 그 설득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혹하다’라는 의미의 seduce라는 단어는 라틴어 seducere에 연원을 두고 있다. se는 away, 즉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ducere는 lead, 즉 이끈다는 의미다. 연결해보면, 떨어져서 이끄는 것을 말한다. 함부로 침범하고 윽박질러 끌어오는 것이 아닌, 거리를 두고 다가오게 하는 일. 나는 여기서 등장하는 거리를 두려움을 넘어선,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자율성의 공간이라고 받아들인다. (이서희 글에서 얻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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