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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6월/황금찬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가 좋아하는 최진석 교수는 일찍 명예퇴직 하고,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 <호접몽가>라는 학교를 짓고, 오는 9월에 연다는 소식을 받았다. "더 나은 우리를 위한 '지적 성장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멋지다. 부럽다. 나랑 나이가 같은 돼지띠인데... 후원할 생각이다. 학교 이름은 "새 말 새 몸짓 기본학교"이다. 기본이라는 말이 어색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경쟁에 내몰리며 기본을 잃었다. 그러나 나라가 자리를 잡아가며, 이젠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아직도 물질적인 축면에서만 나아진 것 같다. 지난 시와 사진 그리고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최진석 교수는 여러 번 말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본’이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주장한다. 누구나 기본만 갖추고 있으면, 세속적인 일에서나 영적인 일에서나 모든 일을 잘 이룰 수 있다. ‘기본’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기본’이 없이 하는 일은 어떤 것도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기본 가운데 기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바로 독립적 주체로 성장하려는 문을 연다는 뜻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근본 질문 옆에 조금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몇 개의 질문들이 포진한다.
-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인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내가 몇 년 전부터 아침 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길게 쓰고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은 최진석 교수가 고향에 내려가 학교를 지은 이유와 같다. 나는 이 글을 매일 쓰면서,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 있다. 그래 점점 더 글이 길어진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 않고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더 나은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하나 밖에 없는 내 딸 이름이 '나은'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사진은 해가 질 무렵 주말 농장에 산책 갔다가 찍은 것이다. 코로나-19로, 역설적이게, 대기가 깨끗해 졌다. 프랑스어에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대를 말하는데, 멀리서 오는 사물이 나를 위한 충성스러운 개인지 죽이러 다가오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로도 쓰인다.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오늘 아침 시는 이 사진을 보고 기억해 낸 6월의 시이다.

6월/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최진석 교수가 지은 학교 건물 이름이 마음에 든다. <호접몽>은 <장자> "재물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를 몽접주인(夢蝶主人)-'나비 꿈 선생'이란 별명을 준 이야기이다. 두 가지 꿈 이야기이다.

- 장자가 나비 되는 꿈: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물론 그 때에는 자기가 장자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서야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었다.
- 나비가 장자 되는 꿈: 꿈에서 깨어나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이야 말로 나비가 꿈을 꾸어 그 꿈속에서 장자가 되어 살아가면서 자기가 나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나비의 꿈은 '나비로 된 꿈'과 '나비가 꾸는 꿈'이라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꿈이 꿈인 것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상태를 다시 꿈꾸는 것, 이건 깸에서 다시 한 번 깨어났다는 것으로 큰 깨어남, 대각(大覺)이라 한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단어가 물화(物化)이다. 이게 장자 "재물론"의 결어(結語)이다.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 서로 어울려 있는 관계, 꿈에서 보는 세계와 같이 서로가 서로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서로에게 나오기도 하는 '꿈 같은 세계'이다. 이런 세계는 개물(個物)이 제각기 독특한 정체성(正體性)과 함께 '하나'라는 전체안에서 서로가 서로 될 수 있는 불이성(不二性)이 병존하는 세계이다.

종이와 구름, 구름과 종이, 장자와 나비, 나비와 장자, 서로 넘나들어, 그야말로 자유자재이다. 이것이 이른바 물화(物化)이다. 사물을 깊이 통찰하는 사람이라면 사물을 고정된 무엇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서로 어울려서 함께함을 볼 수 있다. 이런 세계는 '나를 잃어버린 상태(吾喪我)'에서 진정으로 체득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런 세계를 체득할 때, 쓸데 없는 아집, 편견, 국지주의, 자기 중심주의, 일방적 단견, 오만 등에서 풀려나 관용과 아량과 트임과 조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 세계에서 노닐게 된다.  

'오상아'가 되어야 물화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에서 구름을 보는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있을 수 없고, 비가 없으면 나무가 없고, 나무가 없으면 종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종이에서 구름 뿐만 아니라 햇빛과 비와 나무와 새소리와 공기와 하늘을 다 볼 수 있다. 또한 종이가 타면 재가 되므로 종이에서 재를 볼 수 있고, 탄소도 볼 수 있고, 다이아몬드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종이에는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종이는 종이가 아닌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므로 '종이는 종이이다'라는 대신에 종이는 '구름이다'하는 편이 더 적절한 말이다. 남자는 여자를 모른다고,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고, 말하기 전에 남자 여자, 이런 구별을 하기 전에 남자가 여자이고, 여자가 남자라는 서로 넘나드는 자유자재가 더 중요하다. 그 자유자재의 세계는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될 수도 있는 세계이다. 이런 세계는 만물이 상호 합일하고, 상호 침투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연관하고, 상호 의존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변화하고 상호 연기, 상호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다.

최진석 교수가 만든 <호접몽가>는 위에서 말한 장자의 핵심 사상인 도가 사상을 표현한 건물이라 한다. 지붕은 <장자>의 모티브인 나비 날개 모양이고, 노자의 기본 사상인 유무상생에 따라 둥근 건물 기둥은 종이로 만들었고, 반투명 플라스틱을 댔다고 한다. 그리고 송송 구멍이 뚫린 담벼락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집은 종교 건축에 일가견이 있는 윤경식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 한다. 최진석 교수가 말한 "철학은 개념으로 지은 집이고, 건축은 벽돌로 쌓은 철학"이라는 멋진 말을 했다. 우리는 평소 집을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 외, 그의 인터뷰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 위대한 개인은 “자기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까지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는 이다.
- "감각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두 개, 감각과 지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본다.  
- "예술을 하든, 철학을 하든, 문학을 하든, 사업을 하든 이제 우리는 탁월한 높이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궁극적 질문을 자주 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합니다. 기능적 단계에서 헤매고, 성과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궁극적 질문 앞에서 몸부림치지 않죠. 삶을,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고, 그 궁극적인 생각을 붙드는 습관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 수강생 선정기준은 자기 자신에 관심이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가, 기능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존엄한 삶과 탁월한 삶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이다.
- “예술가들은 무엇을 표현할까 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들어진 예술이 아닌, 튀어나오거나 토해져 나온 것들이어야 감동을 줍니다. 예술적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높이의 영혼을 갖는 것이고, 그런 예술적 높이를 자주 경험한다는 것은 영혼의 승화에 큰 영향을 미치죠. 아름다움으로 부터 받는 충격이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 예술을 그냥 감상할 때와, 계속 갖고 싶어 소유할 때 그 입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감상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소유해 보니 다른 높이, 색깔의 감동이 오더군요. 예술품으로부터 얻는 감동의 높이로 내가 상승한다는 기분을 갖는 건 너무 행복한 경험이죠.”
- 최교수는 지적인 활동을 통해서 내가 승화된다는 걸 알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최 교수는 가장 예술적인 것은 ‘의외성’에서 온다고 했다. 누구나 생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세상일도 잘 하려고 해서 잘하는 확률보다는 ‘다르게’ 하다가 잘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설명이다.
-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지금보다 나은 우리가 돼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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