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빠/박후기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에 이어, 전 고려대 총장 염재호 교수의 이야기를 오늘 아침 또 공유한다. "COVID-19 이후, 이전에 보이지 않던 직원들의 진짜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숫기는 없지만 일은 제대로 하는 유형, 실력은 없는데 상급자들에게 정치를 잘하는 유형,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고 무임승차(freeriding) 하는 유형 등 세 가지 유형의 직원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기업들이 COVID-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해보니 이제 누가 진정한 인재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과정(process)이 아니라 결과물(product)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재택근무가 알게 한 세 가지 인재형을 정리하면 이렇다.
- 숫기 없지만 제대로 일하는 유형
- 실력 없는데 정치 잘하는 유형
- 무임승차형
나는 어느 형일까? 뜨끔하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나는 올 초부터, 대학 학위가 '신분의 상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명문대 학위 하나로 평생을 먹고 살던 시대는 가고, 끊임 없는 재교육과 세세하게 개인 능력을 평가하는 '정량화된 자아(自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염재호 교수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10년이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장이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모두 일류대 입학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 입학률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진정한 능력으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의 폭을 넓히고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는 아니다. 만약 고등학교 졸업하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면 준비해서 몇 년 뒤 대학에 가도 된다.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다."

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구상 중인 우리동네 마이크로 칼리지(Micro College)에 대해 상상을 했다. 이름은 <우리 미래 마을대학>으로 정했다. 영어로는 Woori Mirai Micro College이다. 약자로는 WMMC이다. 9개의 캠퍼스가 시작된다. 미래라는 말을 쓴 이유는, 보통 우리는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고 하지만,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거꾸로 "미래가 현재를 만든다"는 주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하느냐 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초고용(super employment) 시대이다. 정규직은 점차 줄어들고, 2개월에서 짧게는 2시간까지 단기 고용해 일을 맡기는 임시직(gig)이 대세가 된다. 앞으로 똑같은 직업이라고 해도 하는 일은 전혀 달라진다. 예컨대, 교사는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대신, AI 교육 로봇과 한 교실에서 협업하게 된다.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2030년에 경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평생 8-10개 직업을 바꿔가며 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기술 재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2주-2달의 짧은 교육 수요가 높아져 대학도 마이크로 대학(micro college)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 디자이너, 드론 파일럿이 되는 걸 배우는 거다. 이를 위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2년간 공부해 새로 학위를 따는 건 말이 안 될 것이다.

오늘 아침은 아픈 시를 공유한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꾼다. 내 생각이 발효되어, 우리 마을이, 내가 꿈꾸는 <마을대학>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은 <우리 미래 마을대학> 제 4캠퍼스의 찻집 인테리어 하나를 찍은 것이다. '어린 왕자'가 꾸는 꿈처럼, 나도 꿈을 꾼다. 오늘 인문운동가에게 힘을 주는 한 마디. "물 한그릇이 씨앗의 싹을 틔운다. 꽃의 꿈은 씨앗이다."

오빠/박후기

오빠는 시간 강사,
몰락한 집안의 기둥이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어김없이 도서관에 들러
무거운 책을 상대로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오빠는 주먹보다 입이 세다
지방 원정경기도 마다하지 않는
오빠가 믿을 것은
맷집밖에 없다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아들,
맞아도 맞아도 돌아서지 않는 애인,
맞아도 맞아도 도망치지 않는 오빠의
터진 입술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엄마가 운다
싸움을 기다리는 시간이
막상 싸우는 일보다 더
막막하고 두렵다는 것을
대기실에서 청춘을 보낸
오빠는 알고 있다
늦은 밤,
취한 주먹을 툭툭 허공에 던지며
문을 열고 오빠가 등장한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그 날 하루 동안 언론에 올린 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네이버의 <오피니언>이라는 곳을 방문한다. 어젠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의 김영민 교수 칼럼을 만났다, 그가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이라는 연재를 새로 시작하는 첫 번째 칼럼이었다. 우리는 생각의 힘을 잃었다.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부터 온 '생각 당헌 생각'인줄 잘 모르고 산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역병[코로나-19]을 예측하지 못했던 지식인들이 매스컴에 나와 역병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다. 마치 ‘노멀’이 존재했던 양 이제 ‘뉴노멀’을 말하기 시작한다. 정치인은 구원을 약속하고, 정치의 팬덤화는 가속화되고,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된 한국 공론장의 굿판적 성격은 변함이 없다. 생각의 폐허를 가득 채운 구호와 비난과 불안과 억울함과 집단 흥분 속에서 종파 종교들은 번성한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한국에는 현재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이도 50명이 넘는다. [이런] 예언가들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선진국에 대한 환상에 쉽게 의탁하거나, 자신을 연민하는 정신적인 울보가 되거나, 달콤한 힐링을 섣불리 찾지 않는 것이 좋다.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사회 안전망과 이젠 쓸모 없어진 흔적기관과도 같은 인권 의식을 가지고 선진국 행세를 하는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도덕적 담론을 넘어서는, 강철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잘 다져진 절망과 희망을 안고 강철로 이루어진 생각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죽을 때까지 의연하게 걸어가야 한다."

"강철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 나는, 인문운동가로서, 아침마다 피를 토하듯이 글을 쓴다. 나도, 그처럼, "생각의 공화국"이 필요한 때라 본다. 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 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라는 말을 한다. 중년의 위기가 '진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인생은 늘 위기였는데 그저 중년이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중년이 되고서야 깨닫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금 "허울 좋은" 선진국이 되고서야 깨닫고 있다. 사회는 아직도 많은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데, 선진국이 갑자기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절대빈곤에서 출발, 30여년 간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나라"가 되었을 뿐이다. 김교수의 말을 들어 본다.

"불과 100여년의 시간 동안에 왕조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탈바꿈하고, 자신들이 무시해온 이웃 나라에 강점 당하는 식민지 체험을 겪고, 동족에게 죽창을 꽂는 상잔의 전쟁을 거쳐, 끼니를 걱정하는 빈국에서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권의 부국으로 도약하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쓴 나라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한 이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지옥 불에도 무너지지 않은 그을린 가옥이며, 한국인은 지옥 불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그렇다. 환상에 빠지지 말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무섭다. "한국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인적·물적 자원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곳. 원하면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시민의 동선을 샅샅이 복구할 수 있는 곳. 와불(臥佛)처럼 달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추노(推奴)꾼처럼 전력 질주하는 곳. 이곳에 안온한 선진국형 게으름과 권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헬카페’에 독한 위스키와 커피가 넘치듯이, 헬조선에는 독한 역동성이 넘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사냥하듯이 먹고, 자신이 굴릴 돌을 앞장서 고르는 시시포스의 심정으로 직장을 고른다. 각자도생에 분투하는 동안 삶은 빨리 지나가고, 영혼은 간헐적으로나 존재한다. 역병에 이어 도래할 경제 위기에, 시시포스는 노역에서 해방, 아니 해고될 것이 두렵다. 비참하게 죽기 싫어하는 그 두려움을 연료 삼아 예언자들이 설치기 시작한다."

이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나는 값싼 위로를 하는 '힐링 인문학' 보다는 현실을 까발리는 '필링 인문학'에 무게를 두는 인동운동가이다. 싫어도 알아야 한다. 김 교수같은 멋진 표현을 할 수 없어 그의 말을 인용한다. "이 나라가 기어이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건, 잘생기지 않은 얼굴을 기념하기 위해 청동 흉상을 만드는 일 같은" 것일 수 있다. "기존의 선진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아니라고 판명되었기에 자신이 느닷없이 선진국이 되는 기분은" "살을 빼지 못했는데도 남들이 살이 찌는 바람에 다이어트의 달인이 되는 기분", "다른 사람이 모두 팬티를 내렸기에 자기만 갑자기 세계 최정상의 패션모델이 되는 기분"일 수 있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가? 김교수의 칼럼에서 읽었다. 이건 나나 김교수의 '의견'이 아니라, 이 나라의 '팩트(사실)'이다. "2016년 한국 정부는 제32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발의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폭력과 차별로부터의 보호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다. 그러니 외교부 장관이 2020년에 해외 언론에 대고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변화를 촉구하면 기존의 편견들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한국이 인권에 관한 한 결코 선진국이 아님을 세계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장관이 인권을 위한 사회적 변화에 유보적 태도를 보인 바로 그 5월 13일, 한국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조건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나라임이 다시 한번 판명되었다.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근무하던 하청업체 6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가 끼어 죽은 것이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사고가 아니다. 3월12일에는 과로에 시달려 온 40대 계약직 배송 노동자 김모씨가 새벽 배송을 하던 중 숨졌고, 4월 29일에는 이천시 모가면의 건설 현장에서 물류창고 화재로 인해 노동자 38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5월 21일에는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용접작업을 하다가 질식해서 죽었고, 바로 그 다음 날에는 목제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고무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2018년 12월 11일 김용균 씨가 발전소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즉사한 이래로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물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노동자 2400여명이 노동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이처럼 죽어 나간다면, 이는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아니라고 고함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자는 뜻에 길게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Coupang> 물류창고에서 번진 코로나-19 확진 자의 폭발도 같은 차원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눈감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며 생각의 공화국을 위해 인문 운동에 박차를 가하자.

어제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좌/우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는, 늘 류근 시인처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교육,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자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가치 따위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할 뿐이다. 거짓과 음모와 야비와 몰상식과 기회주의에 치욕을 느낄 뿐이다." 그래 나는 인문운동가가 되었다. 그냥 맞춤법도 틀리며, 마음대로 칼을 대는 사람과는 인연을 끝낸다. 그냥 삭제한다. 류근 시인처럼, "단 일초의 차단신공으로 이승의 인연을 끝낸다."  오늘부턴 그냥 삭제하며 포기하지 않고, 함께 "생각의 공화국"을 만들자고 손을 내밀 테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미래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박후기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