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최진석 교수는 이런 저런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의 완성과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독립과 자존도 이뤄야 한다." 경제력, 권력 혹은 학력같은 남다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남들과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지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자신과 자신의 식구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매력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매력이 남들과 함께 나눌 때 기쁨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래 이젠 남은 삶을 다른 이들과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쓰려 한다. 그래 동네 사람들과 마을계획 기획단을 만들어 마을 조사를 하고 함께 원탁회의를 하며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그리고 동네에서 공방을 지키고 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마을대학>을 만들고 있다. 이 마을대학은 자기 가게(상점, 프랑스어로 부티크(boutique), 영어로는 shop 또는 store)가 대학의 캠퍼스가 되는 Micro College를 말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2030년에 경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평생 8-10개 직업을 바꿔가며 일하게 될 것이라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기술 재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2주-2달의 짧은 교육 수요가 높아져 대학도 마이크로 대학(micro college)이 대세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 디자이너, 드론 파일럿이 되는 걸 배우는 거다. 이를 위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2년간 공부해 새로 학위를 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마을대학>은 시작은 미미하나, 잘 시스템을 갖추면 멋진 마이크로 대학이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전세계 대학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다.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들이 포진한 기존 대학들은 방향을 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캠퍼스가 없는 마이크로(Micro) 대학을 많이 사들일 것으로 본다. 대학 학위가 '신분의 상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명문대 학위 하나로 평생을 먹고 살던 시대는 가고, 끊임 없는 재교육과 세세하게 개인 능력을 평가하는 '정량화된 자아(自我)'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최진석 교수가 자주 하는 말이 또 있다.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지식은 정답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에 처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문제가 있는 곳에 처하는 사람"으로 보낼 것이다. 치과 예약도 취소했다. 아침 사진은 막 익어가는 매실을 찍은 것이다. 오늘 하루가 사진처럼 싱그러웠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 공유하는 시의 "하루살이"를 이해하는 내가 되고 싶다.
하루살이와 나귀/이영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 줄래?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
내일도 산책 있어.
모레, 모레쯤이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정대협'이니 '정의연", 정신대이나 위안부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며, 각자 자기 진영에 매몰되어 서로 막말들을 한다. 각자 자기 이야기가 옳다고 외친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각자에게 다 옳은 말이다. 사실 틀린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하다. 틀린 말은 지고, 옳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옳은 말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 세상은 해결되는 일 없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살다 보니까,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논쟁이나 토론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여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관념에서나 가능하지 실제 세계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500 여명이 함께 하는 단체 카톡의 주장들을 보면 그렇다. 자기가 보고 싶는 것만 보고, 서로 옳다고 아우성이다.
최진석 교수에 의하면,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는 일은 보기 힘들 것이라 한다. 그럼 누가 주도권을 가질까? 그것은 옳고 그름 너머의 다른 어떤 힘을 가진 자에게 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주먹이 있고, 정치가 있고, 전쟁이 있는 것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 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난 조국 교수문제부터 윤미향 의원 문제를 보면서 서로 대화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이젠 보았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데, 내 말에 설득 당하지 않아, 혼자 속상했던 적이 많았다. 이젠 토론과 대화보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가? 말만으로는 안 되는 것인가?
최진석 교수는 예수의 예를 들어준다. 예수가 얻은 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당했기 때문이고, 일본의 요시다 쇼인은 반 막부 운동을 하다가 막부 세력에 의해 처형되었기 때문에 설득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좌파가 주도권을 가진 이유도 우리의 좌파가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최교수는 그 말 이상의 것을 매력이라는 흡인력이라고 주장한다. 매력(魅力)이란 말을 한문으로 써보면, 힘 아니 능력이다. 한문 매(魅)는 '도깨비'이다. 매력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다.
최진석 교수에 의하면, 매력은 말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말을 압도해야만 만들어진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로만 하는 사람이나, 지속성 없이 변덕스러운 사람에게는 매력이 없다. 그런 매력을 그리스 인들은 티메(TIME)라 했다고 한다.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장기간 수행하여 탁월함에 이르면 공동체는 그에게 존경이라는 선물을 준다. 리더가 발휘하는 힘은 공동체가 주는 이 존경에서 나온다. 말이 아니다. 우리는 리더가 발휘하는 그 흡인력을 '매력'이라 부른다.
그런 매력은 어떤 문제를 붙잡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그 소명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나온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소명에 자신을 전부 바치고 게다가 목숨까지 걸어본 인간에게서 매력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발각된 인격적 결함들은, 그들이 갖춘 매력의 뿌리까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이런 매력을 가지려면 우선 자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해야 한다. 그냥 말만 하면 매력이 채워지지 않는다. 교육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만으로 교육 효과를 얻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교육에서 말 이상의 것이 요청된다. 그것은 인격적 감화력이나 정서적 친밀감으로도 나타난다.
우리의 일상에 매력을 키우려면,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나의 처형장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말만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선진 국가들에서는 '실력'과 '매력'이 '학력과 재력'을 이기는 흐름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 다워야 매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신다운 삶을 상상하고 연습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연민과 협동의 대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개인이라 한다. 그런 사람은 나의 현실을 잊어 버리고, 다른 이로부터 인정이나 인기에 목말라 하는 인간이 아니라, 나에게 더 나은 자신을 알게 해주고, 그런 자신을 추구하는 삶이 내적 평화라는 점을 깨우쳐 주는 사람이다. 그런 위대한 개인은 다른 이를 연민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삶의 스승이 된다. 말로 하는 것이라, 내공으로,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 위대한 공동체를 만든다. 오늘 아침도 여유를 갖고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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