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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서시/한강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 아침은 <인문 일기>를 쓰며, 두 개의 글을 읽고 쓴다. 하나는 2년 전 <인문 일기>에서 만난 글이다. 과정을 거치려 하지 않고, 우리는 삶에게 묻는다. "왜 나에게는 이것 밖에 주어지지 않은 거야 ?"하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 것만이 너를 네가 원하는 것에게 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삭임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과의 내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배철현 교수의 <월요묵상>에서 만난 "인생은 자신이 되어야만 이상적인, 자신이 되기 위한 마라톤이다"는 문장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열망하는 그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인생이 살맛 난다. 내게 그런 열망(熱望)이 없다면,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겨와 같을 수밖에 없다. 약간의 바람에도 날라가 버리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된다는 말이다. 열망은 그 겨가 둘러싸고 있었던 낱알이다. 나는 내가 되고 있는 그것을 위해, 지금 여기서 그것을 향하고 조금씩 전진한다. 나는 그것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過程)이다.

배철현 교수는 "이상적인 자신을 공부를 통해 발견하고, 그 자신에게 눈을 고정하고 매일매일 정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매 순간이 일생이 되고 한 발걸음이 목표지점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일상은 전시상황"이라며, "고통과 역경은 우리의 인격을 조각하고", "도전은 우리의 가치를 마련해  주니", "역경의 극복이 자족하는 삶, 행복한 삶을 획득하기 위한 유일한 처방전"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를 소환했다.

나도 그동안 세네카에 대해 적어 두었던 글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는 악명 높은 네로의 과외 선생이자 고문이었고, 네로는 그에게 자살을 명령하였다. 그는 자신이 흠모하는 소크라테스처럼, 가족을 불러 놓고 의연하게 자살하였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네카는 전통적인 로마의 귀족가문 출신이 아니면서 정치적 야망을 지닌 '정치 신인'이었다. 그는 로마 식민지인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고모의 손에 이끌려 로마로 이주해왔다. 그는 당시 로마 귀족들이 통치자가 되기 위한 과목인 문학, 그리스어, 그리고 수사학을 배워 두각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려서 부터 약골이었다. 천식으로 고생하였고 특히 20살에 걸린 결핵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그는 다시 고모를 따라 이집트로 이주하여 30살에 될 때까지 요양했다. 그의 고모부 가이우스 갈레리우스는 당시 이집트를 통치하는 로마 장관이었다. 그는 기원후 31년 로마로 돌아와 로마 황제의 꿈을 꾸며 출세가도의 길을 차근히 밟기 시작하였다.

세네카는 당대 가장 훌륭한 법률가이자 연설자였다. 그의 특출한 실력은 오히려 그를 모든 사람의 시기와 질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로마황제 칼리굴라(제위 37-41년)는 그의 인기를 시기하여 그에게 자살을 명령한다. 칼리굴라 측근들은 세네카가 결핵과 천식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여, 겨우 생명을 부지하였다. 그 후에 등극한 클라우디우스(제위 41-54년)도 세네카를 자신의 정권을 노리는 정적으로 여겼다. 클리우디우스의 아내 메살리나Messalina는 세네카를 선왕 칼리굴라의 여동상 율리아 리빌라Julia Livilla와 간통하였다고 거짓 기소하였다. 클라디우스 황제는 세네카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원로원으로 구성된 법정을 그를 코르시카 섬에 8년 유배형을 내렸다.

그는 거기서 황량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섬의 가파른 해안 위 한 망루에 감금되었다. 이곳은 1,2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주변은 바위 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로마에서 유배 온 세네카를 푸대접하였다.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지옥과 같은 섬에 감금된 세네카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그곳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41년에 쓰기 시작한 <분노에 관하여(De Ira)>라는 책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가치중립적이다. 온전히 선한 것도 없고 온전히 악한 것도 없다. 행과 불행은 언제나 뫼비우스 띠처럼 얽혀 있다'고 말하며, 배철현 교수는 세네카가 당한 유배가 오히려 오늘날까지 스토아 철학자로, 작가로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신의 선물이었다고 주장했다. 세네카는 유배 온 다음 해인 42년에 어머니 헬비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가 나를 늘 위로해준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환경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나를 찾는 강의가 거의 없지만, 오히려 한가하게 내 영혼을 증진하는 일에 매진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시는 한강의 <서시>를 공유한다. 나도, 시처럼,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라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신형철은 시비평에서 시인이 운명을 대하는 태도를 '원한 없는 삶"이라 했다 한다. "내 삶이 어떤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졌더라도/얼룩지더라도 내 운명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마음." 지금 내 운명은 어디쯤에 있을까? 어떤 자세로 그를 기다려야 할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나고, 기다리는 것이 그일까? 질문들이 나에게도 이어진다.

서시/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다음은 배철현의 지난 <월요묵상>을 읽고 갈무리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큰 위로를 준 글이었다. 세네카는 인생 말년에 폭군 네로 황제 밑에서 10년 동안 고문으로 일한 후, 은퇴하여 인생을 회고하는 편지를 쓴다. 그게 시실리 지방장관인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124통의 편지이다. 그는 이 편지에서 인생의 역경을 맞이하여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살다 보면, 고통과 역경은 불가피하다. 인생이 고해이기 때문이다. 병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배신당하고,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과 마주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들은 인생에서 예외가 아니라 다반사다. 불가피한 역경에 대한 불평이나 낙담은 상황을 더 악화시켜 우리를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버리기도 한다.

이 역경을 이겨 내기 위한 첫 번째 마음가짐으로 배철현 교수는 우리에게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그날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깊이 묵상해보라고 권유한다. 그것은 마치 왕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기습공격을 상상하여 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만일 왕이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여겨, 그런 공격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쟁에서 패할 것이다. 만일 미리 준비한다면, 기습공격이 와도, 그는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그런 자의 실력을 측정하는 관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미래의 어려움을 준비하여 대처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어려움이 자신에게 다가올 줄 몰랐다고 변명한다. 만일 우리가 매일 아침, 15분에서 20분 정도를 할애하여 그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전략적 묵상'을 삶의 중요한 일과로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가 될 것이다."(배철현) 나의 경우는 이게 아침마다 쓰는 <인문 일기>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런 심적인 활동이 분명,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략적 묵상'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오락과 놀이'라고 배교수는 말한다. "철학자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바로 '놀이'였다. 소크라테스는 종종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놀았고, 에피쿠로스는 '정원'에서 친구들과 소박한 와인과 치즈를 즐겼으며 세네카는 정원 가꾸기를 꼭 필요한 일과로 여겼다. 오락과 놀이를 통해 우리는 마음을 친절하게 만들고, 이 친절을 통해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절제를 키울 수 있다."(배철현) 나의 경우는 저녁에 와인을 팔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와인을 마시는 일이 놀이이고 오락이다.

역경이 불가피하고, 미래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전략적으로 묵상'하고, 오락과 놀이를 통해 마음을 유연하게 준비한다면, 우리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처방전을 복용한 셈이다. 만일 그런 역경과 고통이 한동안 닥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운에 감사하고 고요를 즐기며 동시에 다가올 위험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 관계가 끊어지고, 직업을 잃으며,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죽음의 위협이 다가오면, 우리는 그것을 준비해온 인생의 회복력에 대한 시험으로 여길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생은 회복력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네카가 "고통이 없는 삶은 죽은 바다다"라고 말한 것처럼, 고대 철학자들은 역경을 원하지 않았지만, 말할 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불행이나 저주로 생각하지 않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인간의 최선을 인생의 역경이 주조한 예술작품이라고 여겼다. 역경은 한 개인이 지닌 내적인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우는 총성이다. 불이 금을 주조하듯이, 불행은 용감한 인간을 조각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묵상은 매일 아침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고,  운동, 산책, 독서와 같은 나만의 오락은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즐기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통해, 배철현 교수가 가르쳐준 대로, 역경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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