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지난 3월 1일부터 내 삶의 지혜가 될 '아포리즘(金言)'같은 짧은 문장들을 하루 10개 씩 모아 두기로 했다. 좋은 문장 하나는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보기 때문이다. 삶의 진리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하나의 문장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사진은 어제 딸과 점심 먹으러 가다가 한 교회 앞 화단에서 찍은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매화 꽃나무.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이승하
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1. 나는 살면서 이기고 지는 것을 몰랐다. 그냥 생각 없이 살았다.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그런데 여러 군데에서 졌다. 다 아는 비밀이지만 이기려고만 하면 불행해진다. 이제 진 것은 생각하지 말자. 대신 무대 위에 올라가면 이젠 지지 말자. "게임에는 이기고, 인생은 비겨라"(주철환) 조금 비굴하게 살면 어떤 가? 이쪽이 한결 '지속 가능한 평화'에 가깝다. 누구나 자기 입장이 있고, 그 입자에 따라 행동한다. 그걸 알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나는 '입장주의'에 입각해 누구에게도 돌을 던지지 않을 생각이다.
2. 문제는 question과 problem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깃털처럼 가벼운 문제들이 모여 날개가 된다. 깃털이 모여 날개가 된다. 가벼운 것들로 만든 날개. 그러나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다.
3. 버나드 쇼가 어떤 파티에서 수프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이거 돼지보고 먹으라는 거야 뭐 야? 그랬더니 수프를 푸는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한 그릇 더 드릴까요?" 이게 유머 센스이다. 유머로 복수하는 사람이 지혜롭다.
4. 병은 자족할 줄 모른 채 탐욕적으로 먹는데서 비롯된다. 감사하게 먹고, 30번 이상 씹고, 반드시 산책만 해도 건강해질 수 있다. 냉장고에 보관한 귀중한 음식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자라는 채소가 최고의 건강식이고, 이것저것 넣어 맛을 낸 요리가 아니라 첨가물 없이 채소 고유의 맛을 낸 음식이 최고이다.
5. 시대를 짚을 줄 아는 맥을 알며, 전체를 아우르는 혜안을 갖고, 할 말은 서릿발 처럼 하고 싶다. 그러나 시중(時中), 때에 따라서는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한다.
6. 죽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살겠다는 생각, 저렇게 살겠다는 생각 다 부질없다. 개혁이니 보수이니 다 부질 없다. 하루 하루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꽃들처럼 살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꽃잎 지면 지는 대로 하루 하루 좋은 날들로 최선을 다해 채우고 싶다.
7. "같이 걸어가는 사람의 가치를 기억하라."(주철환) 생각이 다르더라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같이'는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종교가 달라도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취향을 충분히 존중해주면서도 함께 갈 수 있다. 같다는 것은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서로의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게 좀 더 나이 먹으면서 생긴 지혜이다.
8. "친구는 동정이나 동경이 아닌 동행의 대상이다."(주철환) 막연한 동정이나 동경이 아닌 먼 여행길, 마음을 열고 함께 갈 수 있는 동행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친구가 되는 순서는 신비감→신뢰감→친근감 순이다. 신비감보다는 신뢰감이 더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뢰감이 친근감이 될 때 동료는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끼리 끼리만 놀기보다는 친화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친화력이란 남과 친하게 잘 어울리는 힘을 말한다. 그 다음 우정을 지키는 방법은 "친구가 '다운'되어 있다면, 그를 '업'시켜 주고, 그가 '업'되어 있다면 조용히 거기에 편승하면 된다." 친구는 기쁨을 배로 만들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준다.
9.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힘은 '본능적인 동작'이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인 활동력'이다. 사람은 인위적이고 의도적(意圖的)인 동작을 해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상징한다. '본능적 동작'의 테두리에 갇힌 것이 동물이고, '인위적인 활동'으로 본능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인간이다."(최진석) 지금의 내 일상을 이런 관점에서 되돌아 보게 한다.
10. '지금까지'의 삶은 지금부터 살아갈 날들의 재료에 불과하다. 더 좋은 날들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그래 포기하지 말고, 오늘 하루도 좋은 날로 채우고 싶다. 나무는 비가 오면 그냥 받아들인다. 맨몸으로 비에 젖는 나무가 된다.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 눈이 쌓인 나무가 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된다. 새가 않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는 거다. 새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거다. 나무처럼 사는 거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이승하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견디고 감당하는 일일 수 있다. (0) | 2023.04.19 |
---|---|
여섯 줄의 시/류시화 (0) | 2023.04.19 |
방문객/정현종 (0) | 2023.04.19 |
봄의 금기 사항/신달자 (0) | 2023.04.19 |
바람의 말/마종기 (1) | 202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