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6일)
오늘 아침은 노자 <도덕경> 제21장을 읽는다. 첫 문장이 "孔德之容(공덕지용) 惟道是從(유도시종)"이다. 이는 "위대한 덕의 모습은 오직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는 거다. 도올 김용옥은 "아~ 빔의 덕의 위대한 자태여! 오로지 도만이 그대를 따르는 도다"라 풀이하였다. 최진석 교수는 "큰 덕의 모습이란 오직 도를 따르는 것이다."
왕필은 공(孔)을 '빔(虛)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도올도 '공(孔)'을 '빔'으로 보았다. '공'이란 '허(虛)'의 다른 표현이라는 거다. '덕(德)'은 '도'라는 보편적 존재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지만, 현실적인 존재와 관련하여 그 기능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며, 왕필이 '덕'을 '득(得)'이라 말했으니, 개별자 속에서 축적되어 쌓여져 가는 것이다. 그것은 '도'라는 보편자로부터 얻어 쌓아가는 것이다. 그 얻음이 '덕'이다. '덕'은 '도'에 대하여 개별성과 현실성이 있는 개념이라는 거다. '용(容)'은 그냥 '모습, 자태'로 해석한다.
(1) "공덕지용"을 주어로 놓으면, "빔의 덕의 모습은 오직 도를 따른다"가 된다.
(2) "도"를 주어로 놓으면, "빔의 덕의 모습이여! 오직 도가 너를 따르는 도다!"가 된다. 이 해석은 빔이라는 덕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 빔이라는 목적어를 앞에 내놓고, 도가 이를 따른다고 한 것이다. 도올은 도의 덕은 허라고 보고, 도는 허이고, 허는 곧 도라는 거다. 도의 덕이 허하다는 말은 실제로 도의 존재성을 형상화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유형, 유명의 실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거다. <<도덕경>> 처음부터 도는 무형(無形)이고, 무명(無名)이고, 불가도(不可道), 불가명(不可名)이라 했다.
최진석 교수는 '덕'을 인간의 이상적인 행위 방식이나 통치 원칙이라 설명하였다. 노자는 이 덕은 자연의 존재 방식과 운행 방식, 즉 도를 모델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공자는 이것은 성인에 의해 확립되고 전승되는 전통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거다.
다 어렵다.내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강남의 풀이이다. 잘 모르지만, 나는 그의 의견을 따른다. "공덕"을 위대한 덕"이라 해석했다. 여기서 덕은 '미덕(미덕)이라고 하 때의 윤리적 덕이 아니라, '누구 누구의 덕'이라고 할 때나 덕택, 덕분 등의 말처럼, '힘', '능력', '은혜' 같은 뜻으로 그는 보았다. 그래 그는 덕은 "도를 따르므로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 여유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물론 이런 덕을 가진 사람은 윤리적으로 훌륭하지만 판에 박은 듯한 윤리 규범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사람은 윤리적 차원을 완성하고 이를 넘어서서 훌훌 자유로이 살아가는 능력 때메에 '덕9힘)을 체득함으로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덕)을 갖도록 가르쳐 말씀(경)이다. 요약하면 자유를 만끽하는 참된 능력(공덕), 그것은 도를 따르는데서만 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다는 설명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면 도란 무엇인가를 노자는 다음과같이 말한다.
道之爲物(도지위물) 惟恍惟惚(유황유홀), 도라고 하는 것은 그저 황홀할 뿐이다.
惚兮恍兮(홀혜황혜) 其中有象(기중유상),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다.
恍兮惚兮(황혜홀혜) 其中有物(기중유물),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질료가 있다.
窈兮冥兮(요혜명혜) 其中有精(기중유정), 그윽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정기가 있다.
其精甚眞(기정심진) 其中有信(기중유신), 그 정기가 지극히 참된 것으로서 그 안에는 믿음이 있다.
"도라는 것은 정말로 황(慌)하고 홀(惚)하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황홀'이라고 하면,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함"이란 말로 사용하나, 여기서는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움"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황이나 홀은 모두 흐릿하야 알 수 없는 모양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가 황이나 홀 하나만 써도 미묘하여 알 수 없는 모습을 형용할 수 있을 텐데, 홀과 황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황과 홀하다고 하다가, 순서를 바꾸어 홀하고 황하다고도 말한다. 어쨌든 황홀하고 홀황하고 또다시 황홀한 가운데 도는 그 자태를 은은히 드리운다.
황홀과 홍활의 교차를 최진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풀이를 해준다. 이 세계는 반대되는 대립면들이 서로 꼬여 있는 형식으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원칙을 드러내 주는 도가 가진 가장 큰 특징도 바로 꼬여 있음에 있으니, 노자는 새끼줄(繩繩)로 도를 은유하기도 하지만, 황과 홀의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보는 세계의 존재 형식을 암시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최진석 교수는 흥미로운 설명을 붙인다. 황이나 홀은 모두 미묘하고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를 묘사하는 말들이지만, 황은 너무 밝아서 흐릿해 진 상태이고, 홀은 어둠 속에서 흐릿해 진 상태라는 거다. 노자가 보기에 도는 배타적인 본질을 가지고 실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없는 것이고, 그것이 세계이 존재 형식이나 운행 원칙으로 모든 것의 존재와 우동에 관여하는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있다는 것이다.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홀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황하다는 것이다. 노자의 치밀한 글쓰기 전략을 파헤쳤다.
그 다음 "其中有象(기중유상)"에서 "기중"은 어떤 특정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홀황하거나 황홀한 도의 운행 과정 속에서 그것으로 '상(象)'으로 드러나고, 또 그런 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본다. 구체적인 사물들의 존재 및 변화는 모두 도가 운행하는 방식 및 존재하는 형식의 지배를 받는다. 도가 어떤 본체나 근원 혹은 실체로서 있다는 뜻이 아님을 최진석 교수는 계속 강조한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그 활홍하고 홀황한 느낌 가운데 상(象), 물(物), 정(精) 신(信)의 4단계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단계가 객관적 물질 세계에 관한 기술로 보아야 한다는 게 도올의 생각이다. 우주는 도에서 생겨나고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직선적 시간의 우주가 아니라 원융(圓融)한 순환의 우주라는 거다.
惚兮恍兮(홀혜황혜) 其中有象(기중유상),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다.
恍兮惚兮(황혜홀혜) 其中有物(기중유물),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질료가 있다.
窈兮冥兮(요혜명혜) 其中有精(기중유정), 그윽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정기가 있다.
其精甚眞(기정심진) 其中有信(기중유신), 그 정기가 지극히 참된 것으로서 그 안에는 믿음이 있다.
여기서 멈추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간다. 왜 나는 화창한 봄날에 노자를 읽으며, 어려운 <인문 일기>를 쓰고 있는가? 왜 나는 나를 인문 운동가라 하는가? 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블로그로 옮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주말 농장에 가다 만난 '바람의 말'이다. 농장에 가서는 일은 안 하고 그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왔다.
바람의 말/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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