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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 질문을 하게 되면,나는 늘 외우는 한 문장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자동으로 반응할 뿐, 삶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느덧 '행복'이라는 시작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에 눈이 멀어 있다. 어제는 처음으로 우리 동네에서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주인공으로 사는 여러 분을 만났다. 그래 우리는 마을학교를 만들기로 1차 합의를 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거다. 오늘날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일부 세력들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를 몸과 살고 있는 장소와 시(詩)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려 애를 쓴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 과학 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살지만 정작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직접적 감각 체험으로 부터 멀어진 채 살아간다. 몸을 사용하고, 몸의 감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우리 마을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학교를 지향한다.
▪ 현대인은 또한 어떤 장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돈다. 마을이 해체되면서 공동체적 삶 또한 무너졌다. 마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이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조차 가족들의 기억의 뿌리가 아니라, 재산 가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우리 마을 학교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애를 쓸 것이다. 그래 뭉쳤다.
▪ 물질적 풍요의 환상을 따르는 이들은 산문적인 현실에 충실할 뿐, 시적 세계에서 노닐지 못한다. 예술을 모른다. 그들에게 일상은 성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회일 뿐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 깃든 신적 광휘를 보지 못한다. 시적 사고는 현실 부적응자들의 낭만적 퇴행으로 치부된다. 현실 저 너머의 세계는 시를 읽어야 볼 수 있다. 우리 마을은 산문의 마을이 아니라 시적 마을을 지향한다.

그런 역사적인 날,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오늘 아침 사진 길을 가다가 찍은 비를 맞고 있는 어린 나무를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오늘 아침 시를 생각했다. "저 채점판은/지상의 누구에게나 만점을 준다." 오늘 하루도 나에게 만점을 주는 행복한 하루를 만들 생각이다. 우선 오전에 주말농장에 가야한다. 우리는 새 밭을 일굴 계획이다. 그러면서 포스트 토로나-19의 세상을 준비한다.

봄비/김규성

저 채점판은
지상의 누구에게나 만점을 준다

쓰레기장이나 장미 가시
밤 짐승 걸려 넘어진 모난 돌에도
내내 투명하고 둥근 방점을 찍어준다

한 걸음 한 걸음
쉴 새 없이 문제 뿐인 수험생이면서
만나는 것들마다
걸핏하면 함부로 가위표를 그어 대는
내 거친 손 등에까지도

그리고 활시위처럼 우산을 펼쳐
길목을 가로막지만
그 위에도 굵은 동그라미를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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