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이 세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지랑이나 먼지,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물들이 서로 입김(숨결)을 내뿜는 현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늘이 새파란 것은 진짜 원래부터 그 색깔인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9만리 높은 하늘을 나는 붕새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면 파랗게 보일 것이다. (<장자> 1:3)
인간의 삶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의 삶도 유동적 우주에 섞여가는 한 형태이다. 우리의 삶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삶 자체가 바로 우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지 않는다.
야마(野馬)로 표현되는 아지랑이와 진애(塵埃)로 표현되는 먼지는 정해진 방향 없이 서로 서로 숨결처럼 계속 움직인다. 이를 우주의 기운이라 할 수 있을까? 정해진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그저 움직일 뿐이다. 왜 움직이는 지는 모른다. 그냥 그게 자연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반대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면서 우주를 완결한다. 음양의 조화로. 여기서 자유가 태어난다. 자기 스스로 그러함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특정 지점에서 관점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기준으로 나를 고정시켜 우주 운행에 방해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다. 최진석 교수는 이 지점에 깨달았단다. 무엇을?
- 이 세상의 일을 여기서 열심히 하면 바로 여기서 저 세상이 구현된다는 것을.
- 저 세상은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 진짜 자유인은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을 관조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이란 것을.
- 원수를 사랑라하는 일이 왜 나를 살리는 일인지를.
- 용서하고 용서받는 일이 왜 인간의 편협성을 벗어나는 우주의 사건인지를.
- 서울 시내의 호텔과 나무위의 새둥지가 그리 크게 다른 것이 아님을.
- 협력이라는 것은 나를 줄이고 반대하는 쪽을 수용하는 일이란 것을.
<장자>의 "제물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구직자(겁많은 까치 선생)가 묻기를 "이익 좇지 않고, 추구함이 없고 이런 식으로 세상 밖에서 유유자적하면 이것이 최고 수준의 '성인'인가 묻자, 장오자(키다리 오동나무 선생)은 "'도'를 실천하는 것은 만물과 어그러지지 않고 오랜 세월울 세상사 섞여 있으면서 자신만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 '자기(自)'가 굳건하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러니 한 가지 기준에 나를 고정시켜 우주 운해에 방해를 주면 안된다.
진짜 자유인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을 관조하며 천천히 움직여 이 세상의 일을 열심히 하면 바로 여기서 저 세상이 구현된단다.
참고: "최진석의 노장적 생각 9: 번잡한 세속과 순수함"(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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