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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길을 가는 사람'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언젠가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옮겨 적어둔 것이다. 그래 나도 틈만 나면 걷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이란 산부인과에서 태어나서 영안실로 돌아가는 그런 지루하고 멋대가리 없는 여정이 아니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길을 걷다가 어느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러면서 고미숙은 인류에게 문명이 시작되면서 다음과 같이 네 개의 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1. 정복자들의 길
2. 순례자의 길-타인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은 내면과 만나고, 자기 마음을 해방시키기 위한 순례의 길
3. 장사꾼들의 길-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물건을 이동시키는 길
4. 집시와 방랑자들 그리고 유목민들의 길

왜 우리는 길을 나서는가? 집을 떠나 새로운 시, 공간을 만나야만 거기에서 오는 낯섦, 설렘 그리고 충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주침, 클리나멘(2021년 1월 31일자 글쓰기 참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주침이 있어야 인간은 변용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늘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 유동성을 신체에 새긴 사람들이다. 사실 인간은 본원적으로 유목민이다. 그런데 약탈자들이 등장해 제국을 건설하는 바람에 국가와 역사에 매이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역사가 없다. 그런 존재들이 한 곳에 머무르면 지루하고 권태로워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런데 왜 집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못할까? 집이 일종의 투자 상품이 괸 것 때문이다. 집이 '사는 곳(liviing place)'이 아니라, '사는 것(something to buy)이 되었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옮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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