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식당의 물컵은 순수한 강철이 아니다. 니켈과 크롬이 포함된 합금이다. 우린 그걸 '스댕' 컵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싫어한다. 이 컵을 쓰는 식당은 주인이 먼저이다. 손님이 나중이다.
나의 감정은 언제나 합금이다. 이 물 컵처럼. 순수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고, 어떤 감정이 엄습하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감정을 쥐어짜낸 뒤 엄습하는 감정을 방어했다. 그래 나도 합금이다. 물 컵처럼.
그런 과정에서 감정들은 뒤엉켜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었고, 이렇게 합급처럼 태어난 감정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그것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스댕'일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나는 서서히 '스댕'이 되어갔다.
그리고 남들처럼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이 왔다. 나는 합금이고, 꿈이 없다, 그냥 순간을 열심히 살려고 하며 나는 산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 어느 순간부터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래 순간을 그냥 열심히 산다. 나는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소리치지 않는다. 나는 이젠 아이가 아니다. 다른 이의 눈에 나는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키며 사는 것 같지만, 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부동을 고수하고 있다.
201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읽다가 만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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