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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국형 건강 수업 (10)

225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29일)
인생/권대웅
 
구름을 볼 때마다
달팽이가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느릿느릿 지게를 짊어진 할아버지처럼
 
밤하늘의 달을 볼 때마다
세간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흥했다 망했다 살다 간 아버지처럼
그렇습죠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하늘에 세 들어 사는
구름처럼 달처럼
모두 세월에 방을 얻어 전세 살다 가는 것이겠지요
 
 
권대웅 시인의 <인생>이다. 인생은 본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런 시도를 '정신을 차렸다' 혹은 '제 정신이다'라고 부른다. '제 정신'은 순수 한국어 '저의'의 준말 '제'와 '정신'의 합성어다. 우리가 자신의 정신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혹은 자신하고 연관된 타인들이 좋다고 제시한 세계관, 종교관, 삶의 철학을 수용하여 자기 삶의 문법을 구축하려 한다. 타인의 이념, 철학, 교리, 가르침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모래 위에서 세운 집이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외부의 유혹에 경도된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그 마음인 '본심'이다. 본심은 성배와 같아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지 가만히 추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할 때, 슬그머니 등장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다.
 
오늘부터 우선 오늘의 시를 공유하고, <인문 일지>를 시작할 생각이다. 몇 일 전부터, 우리는 산상수훈 '팔복' 중 한 가지 씩 정밀 독해를 하고 있다. 오늘은 "제7복인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를 갖고 길게 사유 해본다. 그리고 오늘부터, 다음 내 기둥,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중 첫 번째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첫 번째 기둥: 이동성(Mobility)으로 노화를 이기는 몸" 만들기를 공유한다.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고,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네(Eirene)"로 '죄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박해가 없을 때,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 생활에 골칫거리가 없을 때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다. 박해를 받을 때도 평화롭고,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평화롭고,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평화롭다."(차동엽 신부) 마음의 평화, 안식(安息,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쉬는 것)를 말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은 다음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① 우리가 질 수 없는 짐은 지우지 않겠다.
②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지 않겠다
③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짐과, 고통과 희생을 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섭거나 두려울 리 없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평화이다. 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다.
 
이때 쓰인 '안식'이 그리스어로 '에이레네(평화)' ,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참 평화는 풍랑 속에서, 전쟁터에서, 역경의 반복판에서도 누리는 평화"라고 차동엽 신부는 설명하신 적이 있다. 그럼 이런 평화를 어떻게 해야 누릴 수 있나? 차 신부는 "먼저나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내 안의 상처, 내 안의 허물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말하는 거다. '사랑해!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면 화해가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또 자연과 평화를 이루는 거다"고 했다. 평화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가시에 찔리면 아프다. 심한 경우엔 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상처 난 자리를 얼른 닫아 버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그 뜨끔했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것도 아니고, 아찔했던 기억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시에 찔렸던 자리에 자꾸 마음이 가고 눈길이 머물러 비록 한동안일지라도 상처가 있는 곳이 가장 아픈 곳이 되며 그래서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곳이 된다. 가슴에 찔린 상처도 그렇다.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아니 사랑하면,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산상수훈 제 7복이 마음에 와 닿는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그리고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프란치스코 교종은 말한 적이 있다. 정의를 실현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 중동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아랍인들은 ‘살람 알레이쿰(salām aleykum)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사람들은 샬롬(šalôm)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 두 단어는 셈족인들의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비밀을 품고 있다. 아랍어 살람(salām)과 히브리어 샬롬(šalôm)의 원래 의미는 바빌로니아 경제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0세기에 바빌로니아 경제문서에 이 ‘샬람’šalām이라는 아카드어 단어가 등장한다. ‘샬람’은 어떤 개인이 부채를 상환하여 자유로운 상태를 지칭한다. ‘샬롬’ 혹은 ‘살람’이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알고, 그것을 완수하려고 집중할 때, 나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 그것은 ‘침착(沈着)’과 ‘평안(平安)’이다." 배철현 교수에게서 배운 거다.
 
오늘부터, 다음 내 기둥,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중 첫 번째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첫 번째 기둥: 이동성(Mobility)으로 노화를 이기는 몸" 만들기를 공유한다.
 
이동성 도메인의 내재역량, 곧 신체 기능은 에너지대사체계의 건강상태를 결정해서 노화속도를 제어하고, 정서와 인지에도 영 향을 주는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 도메인의 성능이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일상생활의 모든 움직임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질병에 걸려도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약물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 치료를 받은 후 신체기능이 더욱 떨어져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또한 활동이 줄어들면 마음건강 등 다른 도메인의 상태도 나빠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한 마디로 이동성이 관리 가능한 내재역량 전체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도메인이다.
 
우리의 몸은 원래부터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인간의 골격계는 오랜 기간 동안 이동과 생산수단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와 철도, 자동차 등의 탈 것과 내연기관이나 전기, 유압장치 등의 기계가 보급되면서 사람의 근골격계는 자유로워졌다. 그러면서 인간은 몸의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동성의 내재역량은 큰 폭으로 낮아졌다. 노동으로 서의 운동을 그만두고 이동성을 기계에 맡긴 결과, 역설적이게도 운동 역시 노동 화되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업무를 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헬스장에 온다.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다. 그래 나는 매일 내 와인복합문화공간을 청소하며 운동으로 삼는다. 현대인들은 신체 활동을 굉장히 꺼릴 뿐만 아니라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의 내재역량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 이동성 도메인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동성 도메인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컴퓨터라는 강적이 등장하며 몸의 균형이 깨지고, 또한 식품 산업과 플랫폼 업계의 강력한 시너지로 몸에는 지방이 축적된 나머지 너무 어린 나이부터 신체가 노쇠해져 있다. 나는 지난 2021년 2월자 <인문 일지>에서 '우리 청소년의 운동 부족은 세계 최악'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한국 청소년의 운동 부족은 세계 최악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146개국 11-17세 학생을 대상으로 신체 활동량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94%가 운동 부족이다. 여학생에 한정하면 무려 97.2%이다. 한국의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42.9%)은 아예 OECD 전체에서 꼴찌다. OECD 평균(66%)보다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OECD는 회원국 35개국 외에 중국 등 37개 비회원국도 조사했는데, 이 나라들을 포함하면 한국이 72개국 중 꼴찌라 한다.
 
2008년 뇌와 체육의 관계를 밝혀낸 책 <운동화 신은 뇌>를 써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킨 존 레이티(John Ratey)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온종일 앉아만 있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가둬 놓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말고 공부하라는 건 뇌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레이티 교수는 '운동이 학생들의 뇌를 활성화해 공부를 더 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미국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운동을 시켰더니 2005-2011년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1년 만에 평균 19.1점 올랐다 한다. 같은 기간 운동 안 한 학생들은 9.9점만 올랐다. 이후 '0교시 운동'은 인근 학교들로 퍼져 나갔다. 펜실베이니아주 평균 성적에 못 미쳤던 타이터스빌 학군 학생들도 체육 수업을 강화하자 학력평가에서 읽기는 평균보다 17%, 수학은 18%씩 높게 나왔다.
 
그 외에도 30분간 실내자전거를 약간 숨찰 정도로 달린 후 두뇌 4곳과 해마활동도를 비교했더니 두뇌활동도가 2.5배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졌다거나, 매일 1시간씩 5주간 수영한 쥐는 치매유발물질(베타아밀로이드)을 주입해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는 등 뇌와 신체가 연동한다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어릴 때 운동을 하지 않고 온종일 앉아만있으면 공부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건 이미 입증이 된, 다시 말해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공교육은 청소년들을 세계에서 가장 움직이지 않게 만든다. 특히 소녀들의 경우 무려 97.2%가 운동부족이다. 이 시기의 운동부족은 평생의 체형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운동을 시켰더니 수학 성적이 1년 만에 평균 19.1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어떤 일타 강사가 전교생을 상대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의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는 게 우리 교육의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근육은 줄이고 지방은 늘어나는 근감소성 비만이 되고 대사증증후군과 연관된 만성질환들이 일찍부터 찾아온다. 이러한 가속노화의 결과는 내재역량의 모든 도메인으로 전파된다.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동성 도메인의 내재역량을 보존하면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는 운동과 이동을 굳이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근골격계는 '내구성과 성능이 좋은 교통기관'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수평과 수직 이동의 기본값을 '근육 사용하기'로 만들면 하루에 수백 킬로 칼로리를 더 소모할 수 있다.엘리베이터를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수평 이동에는 보행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다.
 
나는 걸을 때 이어폰을 사용하는데. 이젠 멈추어야겠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걷기가 제공하는 상쾌함을 스마트폰으로 분비된 인위적 도파민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치우고 머릿속에 여유가 생기면 자신의 자세와 호흡을 살펴 보는 거다. 몸 전체의 감각, 귀에서 들리는 소리, 호흡 등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을 이용하는 거다. 뇌의 디폴트모드네트워크를 점검하고 마음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직업을 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걸으면, 스트레스호르몬인 노르에피네네프린의 분비가 줄어든다는 거다. 자신의 몸은 어딘 가로 걸어가고 있지만 뇌는 쉬는 셈이다. 그리고 걸을 때 사용하는 넓적다리와 몸통 근육들이 포도당을 흡수할 통로를 열어주기 때문에 섭취한 음식이 근육을 만드는 데 쓰이고, 혈당 변동폭이 줄어들어 업무의 집중력을 높일 수도 있다는 거다. 게다가 몸을 활용해서 이동하는 습관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동성 도메인의 내재역량을 체계적으로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운동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내일 "어떻게 운동할까"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다른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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