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산다는 것은 계속 무언가를 만나는 마주침의 연속이다. 오늘은 '어떻게 마주칠까'의 문제를 사유한다. 왜냐하면 마주침 자체가 중요하지만, 마주치면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마주침을 고대 에피쿠로스같은 자연철학자들은 '클리나멘(clinamen)'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울어져 빗겨감 혹은 벗어남' 또는 어렵게 '편위(偏位, 각도 차이)'라 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에피쿠로스 파에 속하는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허공 속에서 원자들의 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변화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라 설명한다.
내가 이해하는 클리나멘은 대부분의 빗줄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떨어지는데, 그 중에 몇 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것을 '클리나멘'이라 볼 수 있다. 원래 의미는 '원자 이탈'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타성과 관성에 맞서 이에서 벗어나려는 일탈,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삐딱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직선을 가로지르는 사선의 힘'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관성적인 운동과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힘으로 해석한다. 원자가 직진운동을 하면, 세상은 하나도 바뀌질 않는다. 동일한 방식으로 돌고 돌 것이다. 반대로 원자가 막 제멋대로 간다고 하면 물론 물질의 구성 자체가 안 된다. 그런데 원자 중에 직진을 하는 듯하면서 살짝 옆으로 미끄러지는 데서 온 세계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자 성어 중에 "실지호리, 차이천리(失之毫釐, 差異千里)"라는 말이 있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는 말이다. 호와 리는 자와 저울의 눈금으로 아주 작은 단위를 뜻하는데, 즉 '호와 리를 소홀히 여겨 잃는다면, 천리의 차이로 벌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근소한 차이 같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클리나멘이란 '비껴 감'에 의한 작은 충돌'이 우리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커다란 생성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클리나멘에 인문학적 색채를 입히면, '가로 지르기', '사선', '어긋남', 편차', '횡단' 같은 단어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게 '마주침'에 방점을 찍고 싶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 하며 일탈하여 새로운 마주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두가 '예'라고 하는 상황은, 수직으로만 낙하하는 빗줄기들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바로 사선으로 내 특별한 빗방울이다.
벌써 오늘이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언제나처럼, TWO CELLO의 <Benedictus>를 듣는다. <베네딕투스>는 루까 복음 1장 68절에서79절의 '즈카르야의 노래', "Benedictus deus Israel(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에서 나왔다. '찬미'란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 따위를 기리어 칭송함"인데, 여기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리는 노래'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톨릭 미사에서, 성변화가 끝난 다음 공 이어, "거룩하시도다"의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에 호산사"하고 성가대가 합창하는 짧은 찬가를 따로 베네딕투스라 하기도 한다.
오늘도 기도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가 복음 9장23절). 남해 땅끝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절, 미황사(美黃寺)의 주지 금강 스님이 20년간의 주지 생활을 정리하고 그 절을 떠나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쓴 칼럼에서 큰 통찰을 얻은 아침이다. 두 가지이다. (1) 머무는 마음을 지우자는 것이다. 금강 스님은 아침 마다 다음과 같은 감탄을 하며 일어나셨다 한다. "‘아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눈을 뜰 수 있다니.’ 내가 사는 곳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과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날마다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완성되게 살았습니다. 어제를 떠나 오늘을 사는 방법입니다. 어제의 생각에 머물면 오늘을 온전히 살 수 없습니다. 그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30년을 하루같이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떠나는 마당에서도 1%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에서도 분명히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멋진 삶의 태도이다. 어제를 떠나 오늘을 사는 방법, 머무름이 없는 방법으로 살다 보면, 생의 마지막도 그러할 것이다.
두번째는 고려시대 나옹선사의 시구를 큰소리로 내 귀에 들리도록 읽는 것입니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벗어나게 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르고 열반을 얻으리라.” 한마디로 깨달음을 이루는 부처나 관세음보살이 되어 모습만으로도, 이름만으로도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식으로 풀이하면,'"나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옥의 고통을 면하고, 나의 모습을 모는 것만으로도 해탈을 얻게 하소서'이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답이 나온다.
고 김광석의 노래에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이 있다. 그런 그대에게 가고 싶다면, 1월 말이고 내일이 2월이다 라는 것들은 의미 없다. 오늘 아침의 화두처럼, '클리나멘'으로 많은 것들과 접속하고, 그 걸 연결하며, 새로운 배차를 하며 하루를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며, 그 날 주어진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다. 아침 사진은 동네 양품점의 마네킹들이다. 내일 아침 어떤 옷을 만날까?
그대에게 가고 싶다/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 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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