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26일)

몇 일 전부터, 우리는 산상수훈 '팔복' 중 한 가지 씩 정밀 독해를 하고 있다. 오늘은 제3복인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를 갖고 길게 사유 해본다. '온유'의 히브리어는 '아나브(Anab)'이다. 이 말의 뜻은 나의 자유의지를 양보하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는 거다. 이건 성숙한 사랑의 태도이다. 이 제 3복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올렸던 기도인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고백이 녹아 있다.
난 '온유(溫柔)'란 말을 좋아한다. 온유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다. "온화", "부드러움" 다 내가 좋아하는 가치이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자신을 열고 받아들인다. 온유하다는 말을 연약하다는 말로 인식되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온유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유하다는 말은 약하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 일상에서 온유한 삶은 '내려놓음'에서 비롯된다. 내려놓음은 나를 비우고, 주님께 맡기는 삶의 결단이다. 부드러운 것은 따뜻하여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다. 생각에 부드러움이 스며들면 얼굴이 너그러워진다. 감추어도 저절로 피어나는 넉넉한 미소가 핀다. 고향의 저녁 연기처럼 아늑한 어머니 얼굴이 된다. 온유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물이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비어 있는 곳에 채워지고, 부드러운 곳에 스며든다.
"온유'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부드러움(柔)'을 읽어야 한다. "온유"와 관련된 노자의 일화를 공유한다. '치망설존(齒亡舌存)' 이야기이다. 임종을 앞둔 노자의 스승 상용이 그를 불렀다. 그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였다. 상종이 자신의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네 혀는 아직 그대로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빨은 있느냐?" "없습니다." "이게 무슨 까닭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혀가 아직 그대로인 것은 그것이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빨이 빠지고 없는 것은 그것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같다." 결국 '온유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온유(溫柔)'란 말에서 전체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따뜻함"이다.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따뜻함에서 나온다. 기계는 차갑다면, 인간의 본성은 원래가 따뜻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따뜻함이 있다. 그 따뜻함의 차이가 에너지의 양으로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우주는 음과 양의 파동이라고 본다. 그 파동은 에너지의 움직임에서 생긴다고 본다. 자연은 음과 양이 교차하며, 춘하추동으로 소리 없이 순환한다. 그 덥던 여름이 말없이 사라지고 쌀쌀한 가을이 지나, 벌써 겨울이 오나 하고 의심케 한다. 그러다 어김 없이 또 봄이 온다. 그러니까 우주에서는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관계와 변화 속에 있을 뿐이다. 에너지의 파동에 따라 반대되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운동으로 변화하면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 음과 양의 관계로 움직이는 것은 반대되는 힘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그 힘이 에너지, 따뜻함의 정도, 즉 온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온도가 중요하다. 그 온도를 잃으면 죽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나의 호를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라 졌다. '목계'처럼 완전한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완전한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다. 최고의 싸움 닭은 뽐내지 않는다. I am who I am이다. 나는 나일 뿐이다. 평상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때 중요한 가치가 '부드러움'이다. 교만, 조급함, 공격적인 태도의 사나움 대신 세속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노자가 말하는 "화광동진 和光同塵", 자신의 광채를 누그러뜨리고 이 풍진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한다.), 움직이지 않기가 태산처럼 원칙을 지키며(조급함을 버린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부동여산(不動如山)"의 여유), 부드러운 감성을 지닌 사람이(노자가 말하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러움과 유약함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긴다.)이 되고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온유"라는 말을 좋아했다.
제36장의 정밀 독해이다. 키워드는 두 가지이다. 부드러움의 위대함, 즉 상대방의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받아들여 역으로 승리하는 거다. 반(反)의 정신이다. 두 번째는 싸움의 고수는 자신의 칼날을 함부로 보이지 않는다.
將欲歙之(장욕흡지)하려면 必固張之(필고장지)하여야 한다: 장차 접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주어라. 그러니까 오므리려면, 먼저 펴야 한다.
將欲弱之(장욕약지)하려면 必固强之(필고강지)하여야 한다: 장차 역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라. 그러니까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將欲廢之(장욕폐지)하려면 必固興之(필고흥지)하여야 한다: 장차 폐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주어라. 그러니까 없애 버리려면, 먼저 흥하게 해야 한다
將欲奪之(장욕탈지)하려면 必固與之(필고여지)하여야 한다: 장차 빼앗으려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여기서 "고(固)"는 '먼저(선, 先)'라는 말이다. 원래는 '본시', '원래', '고유한' 등의 의미이다. 접으려고 하면 먼저 펴주어야 하는 것은 사물의 고유한 이치라는 것이다. 우산도 접으려면 먼저 펴 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물이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다. 오강남은 "변증법적 변화"라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반대편을 향해 열려 잇고, 그 반대편의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제40장)가 "유무상생(有無相生)(제2장)의 내용이다. '장차 접고 싶으면 먼저 펴주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고안된 권모술수가 아니라, 우주의 존재 형식이 원래("固") 그러하고 사물들의 성질이 본래("固") 그러하다는 것이다. 제22장의 "곡즉전(曲則全)"이 우주의 운행 원리("固")를 설명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그것을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적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최진석 교수의 풀이이다. 노자는 우주의 원리를 근거로 하는 이런 지혜를 "미명(微明)"이라 했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어제에 이어, 가속노화를 그치게 하기 위해, 복합적응계인 '몸'에 대한 이해를 이어간다. 오늘의 주제는 "습관부터 노화를 재설계하자'는 거다.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꾸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자각하는 거다. 현재 겪고 있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결과 그리고 해결했을 때 개선되는 점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깨달어야 그동안 살아온 관성을 이기고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그래야 잘못된 습관을 개선해야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다. 하여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인데, 주변의 많은 이들이 자각하지 않고, 나름의 변명 속에 산다.
두 번째는 나쁜 습관 회로를 없애고, 좋은 습관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의 뇌에는 중독화로와는 별도로 습관회로가 있다. 그걸 단순화하면, '신호→화로작동→'행동→목표 보상→신호'로 구성된다. 다음 그림은 습관회로의 개념도이다.

다음은 습관회로를 만들거나 없앨 때 사용할 수 있는 양성 되먹임(positive feedback)과 음성 되먹임(negative feedback)의 개념을 나타낸 그림이다.


습관회로가 유지될 만큼의 목표(이성)나 보상(본능)이라는 연료를 제거하면 습관은 버릴 수 있다. 마지막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생각과 행동을 쪼개어 분석해야 한다. 우선 생각(목표)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가장 주요한 습관회로의 원동력을 파악했으면 이를 이용해서 회로를 명확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각, 태도에 따른 이성의 힘(생각), 장애물 등 모든 가용 자원을 다차원적으로 동원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습관을 만들기는 아예 포기하고 직장이나 가정에서 강제로 부과되는 의무들만 가까스로 해내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신체기능이 자신의 몸에 중요한 요소라고 자각하는 것이다. 신체기능(체력)이 좋으면 삶의 큰 스트레스도 견뎌낼 역량이 생긴다. 만약 신체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그 자체로 일상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다른 요소들에서 악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을 아주 높은 우선 순위로 두고 지속 가능한 습관으로 만드는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아니면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몸에는 딱딱한 관절과 지방조직만 남는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면 선순환이 싹트기 시작한다. 운동 습관을 매일 반복하면 생활의 여러 요소가 빠르게 개선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또한 해낼 수 있는 운동 강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점점 더 많이 분비된다. 그렇게 유지하다 보면,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습관회로의 재생산지수가 복리의 문턱 값을 안정적으로 넘기고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습관은 내재역량을 쌓아가는 데 아 중요한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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