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2월 26일)

어느 해보다 한가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딸과 둘이 보냈다. 어제는 오전에 두 시간을 걸었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통해 흥미로운 책을 한권 알게 되었다. '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 동부'라는 부제를 단 <<오우아(吾友我, 나는 나를 벗 삼는다)>>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박수밀이었다. 호남 실학의 시조로 일컬어 지는 위백규는 "남을 보느니 나 자신을 보고, 남에게서 듣느니 나 자신에게 듣겠다"라는 좌우명을 남겼다 한다. 그리고 이덕무는 홀호 지내다 맞이한 눈 내리는 새벽이나 비 내리는 밤에 "나는 나를 벗 삼는다"고 했다 한다. 그는 이 말,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품위와 내 자존감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마음 같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졌다.
1부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로 '나는 나를 벗 삼는다.'
2부는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길로 '마음을 바꾸면 삶이 아름답다.'
3부는 욕망을 다스리는 길로 '멈춤을 알면 오래 간다.'
4부는 당당히 혼자서 가는 길로 '내 삶의 주인은 나다.'
4개의 좋은 경구이다. "마음에 꼭 드는 시절에 마음에 꼭 드는 친구를 만나서 마음에 꼭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꼭 맞는 글을 읽으면, 이것이야 말로 지극한 즐거움인데, 그런 일이 어찌도 적은가? 라며 이덕무는 탄식하며, 그는 "나는 나를 벗으로 삼는다!"라 했다 한다. 나도 나를 벗으로 삼을 생각이다. 고단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생각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을 터놓을 사람이 없더라도 내 품위와 내 자존감을 나 스스로 지킬 생각이다. 삶이 외로울지 언정, 그 외로움을 기꺼이 사랑하고 내 길을 따라갈 생각이다. 이 세상에 나는 오직 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살 생각이다.
저자는 박쥐 이야기를 했다. 박쥐는 쥐라고 하기도, 새라고 하기도 애매한 처지이다. 어느 한 쪽에 소속되어야 안전한데,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를 못하고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나 박쥐는 박쥐일 뿐, 굳이 어느 쪽에 소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박쥐는 박쥐면 족하다. 오히려 박쥐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다만 내게 속했을 뿐이다. "나는 내게 속했다!" 멋진 표현이다. 이 자존감이 세상을 당당히 홀로 가게 한다. 물론 관계는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억지로 무리에 끼고, 관계에 연연할 것은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관계 과잉의 시대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내게 속했고, 나는 나를 벗 삼는다. 이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가면 그 뿐이다."(박수밀)
"차라리 혼자서 가라/ 어리석은 자와의 동행을 꿈꾸지 말라. 죄업을 벗고 집착을 떠나 숲 속의 코끼리처럼 혼자서 가라"는 <<법구경>>의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숫타니파타> 구절도 떠오른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과 집착, 번민과 애착
그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해탈의 진리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매 임을 버리고
매듭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는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려 가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이 되라'고 읽는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다음 문장을 만났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라야 흡족해 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비결은 자족(自足)이다. 요즈음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시인인 이이엄(已而广) 장혼(張混)을 알게 되었다. 중인 신분, 불편한 몸, 가난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그는 시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오늘 아침은 그의 <평생의 소망(平生志)>를 공유한다. 그는 기와도 얹지 않고 칠도 하지 않은 평법하고 소박한 집을 다 짓고 그곳에서 살아가 고픈 소망을 쓴 거라 한다. 집의 이름이 '이이엄'이었다. 이 말은 "그 뿐이면 족한 집'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이'는 '~일 뿐'이란 뜻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미라 한다. 그리고 집의 이름을 당(堂)이나 재(齋)가 아닌 엄(广)으로 붙인 것도 흥미롭다. 그는 자족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면 그뿐, 더 이상의 욕심을 바라지 않았다. 단출한 집에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의 평생 소망한 삶이라 했다. 그는 적게 가지고 행복할 줄 아는 비결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 뿐이면 되는' 삶의 태도에 있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저 주어진 조건과 한경을 수용하며 누릴 줄 알았다.
홀로 있을 때는 낡은 거문고를 이루만지고 오래된 책을 펼쳐보며 한가롭게 드러누우면 그 뿐이다.
잡생각이 나면 밖으로 나가 산길을 걸으면 그 뿐이고, 손님이 오면 술을 내와 시를 읊으면 그 뿐이다.
흥이 오르면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면 그 뿐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 뿐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 뿐이다.
춥거나 더우면 내 옷을 입으면 그 뿐이고, 해가 저물면 내 집에서 쉬면 그 뿐이다.
비 내리는 아침, 눈 오는 한 낮, 저물 녘의 노을, 새벽의 달빛은 그윽한 집의 신비로운 운치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기 어렵다. 말해 준들 사람들은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날마다 스스로 즐기다가 자손에 물려주는 것이 내 평생의 소망이다. 이같이 살다가 마치면 그 뿐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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