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2월 25일)

오늘은 성탄이다. 아기 주 예수가 오신 날이다. 성탄(크리스마스)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물기 위하여 인간(예수, 그리스도)이 되어 오셨음을 축하 드리는 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마누엘(Emmanuel)"을 외친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일년 동안 제 글을 함께 해주시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이와 모든 것들에 다시 또 한 번 외친다. "임마누엘".'
세계가 생일을 축하하는 그 분의 이름이 몇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이름 '예수아' 혹은 '여호수아'의 핼라식 명칭)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이다. 이 이름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그리고 '임마누엘'이다. 이 것은 천사가 미리 알려준 이름이고, 예언자 이사야가 알려준 이름이다. 그 뜻은 '하느님이 자신의 피조물과 바로 지금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죄인들과 함께 계시며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어린 예수를 '구세주(메시아)'라 부른다.
당시 로마가 자신들의 지배를 통한 평화를 위해 '팍스 로마나'를 외칠 때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이 합당하다고 말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과 짬짜미로 돈만 버는 언론들과 법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지키려는 소위 '법 쟁이'들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게 돈이 되는기가?”(<재벌집 막내아들>)만 묻는 세상이다. 아기 예수는 이것들이 '엉터리 평화'임을 목숨 걸고 저항하셨기에 우리는 그를 구세주라 부른다. 그 아기 예수가 어제 밤에 다시 오셨다. 우리가 이 아기 예수에게 무릎을 꿇고 '임마뉴엘'을 외치며 경배하고 축하드리는 것은 진짜 평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렇게 낮게 오신 아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면서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우리는 '황금률'이라 한다. '엄청난 rule(규율)'인 것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를 대접하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다른 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환대하라'. 오늘 내일만이라도 그 사랑을 내 일상에 가득하게 하고 싶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에는 평화, 나에게는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라는 메시지이다. 그동안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았다면, 오늘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라는 날이다. 그냥 이벤트나 축제가 아니다. 낮은 곳으로 아기 예수가 오신 것처럼, 나 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라는 거다.
살아있는 구유를 방문하자. 구유는 성탄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구유는 비참한 현실에 있는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며, 하느님의 보호이다. 가난한 형제는 우리가 연대하며 다가가야 할 성탄 구유이다. 이것이 살아 있는 성탄 구유이다. "우리가 구세주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성탄 구유는 가난한 이들이다"고 말씀하신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이 좋았다.
성탄, 즉 어린 아기 예수의 탄생이다. 자연의 햇살과 비처럼, 가난한 구유를 통해 예수의 오심은, 아픈 자연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채우시는 사랑이다. 햇살은 패인 곳에 더 머물다가 가고, 비는 패인 곳을 더 흠뻑 적신다. 우리도 아픈 곳에 더 머물고, 아픈 곳을 사랑으로 더 채울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햇살과 비처럼 어려운 이웃과 자연을 사랑으로 채우는 '나'가 되었으면 한다.
왜 예수님께서 구유에 오셨을까? 그 구유에는 똥 내가 콧구멍을 헤집어 파내고 아이들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위로가 필요한 가난한 곳에 가면, 우리는 마음이 더 평화롭고 행복하다. 오성호텔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고 나면 혀는 입맛이 살아나고 배는 부르겠지만 마음과 영혼은 배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거다. 전대에 여벌 옷과 신발을 가지지 말고 스스로 가난한 복음의 순례자가 되라 하신 말씀이 동네를 도는 내내 돼지 똥냄새와 함께 밟혔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유로 우리에게 그런 가난의 기쁨과 평화를 주시러 오신 거다. 우리 삶이 구유가 되어 생명 사랑 정의 평화의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우리 인생 전체는 하나의 구유이다. 그 구유에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말로는 귀로는 좋아하지만 삶으로는 싫어하는 사랑과 자비, 나눔과 희생, 정의와 평화가 아닐까? 말로는 싫어하지만 삶으로는 좋아하는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 불의와 타협, 돈과 권력이 아닐까? 우리가 하느님께 갔을 때 내 인생의 구유에서 무엇을 꺼내 하느님께 선물로 드릴 수 있을까? 내가 지고 온 십자가,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 삶,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순간들을 하느님께 선물로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를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통해 내 마음 안에 탄생하지 않으신다면 성탄은 나에게 하나의 축제이고 공휴일로 기억될 뿐이다. 성탄은 산타 클로스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처럼 모든 이를 기억하며,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 정신을 믿고,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늘 지니고 절망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 길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사월책의 대표인 안희곤의 글을 공유한다. 성탄절 아침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politikon)이라 정의했는데, 여기서 ‘정치적’이란 말은 정확하게는 폴리스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는 인간의 활동을
- 이론적 활동(테오리아),
- 윤리적 실천(프락시스),
- 제작 활동(포이에시스)으로 나누면서 생존을 위한 활동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활동 곧 프락시스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생각을 일부 이어받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 인간 활동을 생존을 위한 노동(labor),
- 외부 세계에서 의미를 캐내는 작업(work),
-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 관계를 실현하는 행위(action)로 나누면서, 근대에 들어와 행위의 공적 영역이 생존과 노동의 사적 영역에 잡아먹혔다고 지적한다.
공적 영역이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권력의 사유화로 증발해버리고, 시민들은 그들 대로 개인의 사적 안녕이라는 몰정치적 태도에 빠진 것이 그러하다."
오늘 공유하는 시의 <성탄제>는 기독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시 속의 화자는 성탄 시기에 내리는 눈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회상한다.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아버지의 사랑, 그것은 "산수유 붉은 알알"이고 때는 마침 성탄 무렵 겨울이었다. 그래 이 시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내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정신을 지니게 한다. 난 오래 전부터 크리스마스가 오면 이 시를 소환한다.
성탄제(聖誕祭)/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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