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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바닷가 우체국/안도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의 화두는 "세상이 사나우니 음악 필요하다"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지난 해부터 배워 둔 성악과 색소폰이 내 삶의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그 음악이 내 일상의 균형 맞추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달부터, 잘 사는 방법은 긴장의 양과 이완의 양을 군형 잡는 것이라 깨달었다.

<소학>의 주석서인 <집해>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곧은 자는 반드시 온화함이 부족하므로 온화하고자 하고, 너그러운 자는 반드시 그 엄숙함이 모자라니 한쪽으로 편벽될까 염려하며 보충하는 것이고, 강한 자는 반드시 오만함에 이르므로 그 오만함을 없애고자 하니, 그 지나침을 막아서 경계하고 금지하는 것이다. 주자(고관대작의 맏아들)를 가르치는 자는 이같이 하되 그 가르지는 바의 도구는 오로지 음악에 있으니, 음악은 사람에게 중화의 덕을 길러서 그 기질의 편벽됨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긴장과 이완의 균형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곧음에 온화함을, 너그러움에 엄숙함을, 강함에 겸손함을 더하는 것이 바로 중용의 덕인데, 음악이 그걸 길러준다는 것이다. 중용은 나같은 인문운동가들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다음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중용>의 내용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한다. 그것들이 생겨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리고 한다. '중'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고, '화'는 천하에 통하는 도다. 중화에 이르면 하늘과 딸이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난다."

'중'은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말한다. 하늘이 준 선한 본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에 세상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화'는 감정이 드러나되,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도록 조화롭게 드러난 상태이다. 따라서 세상이 조화롭게 되고 잘 다스려지려면 화의 도리가 지켜져야 한다. 화의 도리를 나는 '균형 맞추기'라 풀어 본다. 어려운 말로 이게 "중용'이지만.

공자는 이러한 '화', 조화, 균형 맞추기, 중용을 이루기 위해 조화의 예술인 음악을 항상 접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고 했다. <서경>에 이런 주장이 있다. "순임금이 기에게 명했다. '너를 전악으로 임명하니 고관대작의 맏아들을 가르쳐라. 그들이 곧으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엄정하고, 강하면서도 포학함이 없으며, 대범하면서도 거만함이 없도록 하라. 시는 사람의 뜻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노래는 가락을 붙여 길게 말하는 것이며, 음률은 길게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8음이 서로 조화를 이뤄 질서를 잊지 말아야 신과 사람이 화합할 수 있다."

위의 글도,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왜 음악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 잘 말해 준다. 음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화(敎化)도 일어나지 않고, 풍속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아가 천지의 조화와 천하의 평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으려면 어릴 적부터 음악을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윤제 작가는 <다산의 마지막 습관>에서 "음악은 아이에게 들려주는 미래이다"고 말하는가 보다.

언젠가 적어 두었던 글이다. 지금 세상이 거짓말처럼 트로트 열풍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 열풍은 어딘가 수상하다. 좋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와 생긴 본질적 흐름이 아니라 ‘음악의 예능화'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빨리 휘발될 이 열풍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건 괴롭다. 그런 흐름에 최근에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뜬다.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 개념 리부팅(rebooting)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트로트 열풍의 가사들은 너무 뻔하고 퇴행적이어서, 어떤 건 듣기에도 민망하다. 멜로디엔 미학적 수고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편곡은 열 곡이 한 곡인 듯 기계적 패턴을 반복해왔다. 그리고 교태 섞인 꺾기를 가창의 표준으로 삼아, 무대에서 품위를 밀어내 왔다. 그 결과 점잖은 주류 음악에서 밀려나 행사용 음악으로 전락했다. 어느 음악학자는 트로트의 미덕이 솔직함이라 했다. 솔직함은 삶을 대면하는 솔직한 태도여야 하지, 감정을 여과없이 쏟아내는 미학적 방기여선 안 된다. 이주엽이라는 작사가의 주장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의 성인 가요들은 그 책임을 방치한 채, 민망한 직설을 솔직함으로 포장하고 있다. 노래가 격조를 잃으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대중의 것이 된다. 좋은 노래 한 구절이 가슴에 오래 머물 때, 수용자 내면의 태도가 바뀌고 삶이 고양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삶의 이야기가 그만큼 근사해 진다. 근사한(그럴듯하게 괜찮은)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삶이 근사해 야지 않나? 반대로 저급한 노래에 삶이 포위될 때, 삶의 감각 역시 볼품없이 쪼그라든다. 가수들은 행사용 자의식을 버리고, 그 옛날 좋은 선배들이 그랬듯 다시 음악가적 자의식들을 장착하기 바란다. 무대에서 객석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자신과 진지하게 대면하고 몰입하는 순간들을 만나기 바란다. 그 순간 서민들의 애환은 아름답게 고양될 것이다.

오늘 아침은 코로나-19롤 침잠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서정적인 긴 아름다운 시 하나를 공유한다. 나는 철지난 바닷가를 좋아한다. 그 바다를 상상하며,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에 있는 <오후:사이>라는 찻집에서 찍은 것이다. 오늘은 저 비행기를 타고 어린 왕자와 함께 텅 빈 바닷가에 가고 싶다.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는 바다를.

바닷가 우체국/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쳐다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 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늘 그런 것처럼, 이 시를 소개한 [먼. 산. 바. 라. 기.]님의 멋진 덧붙임 이야기와  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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