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이 제안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 제4탄(2020년 10월의 책) 『데미안』에 대한 최진석 교수와 개그맨 고명환이 함께 하는 북 토크에서 최진석 교수는 『데미안』을 읽은 후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문장을 뽑기 위해 다음의 세 개 문장을 갖고 내면적으로 충돌을 겪었다고 한다.
-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
-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천직)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 이제는 한 번이라도 진짜로 살아보고 싶다.
이 세 문장 중에, 최진석 교수는 마지막 문장을 택했다. 그에 의하면, 진짜로 산다는 것은 "나를 향해 쉼 없이 걷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으면서 숙고하는 일이다. 무엇을 숙고하는가? 바람직한 일보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생각, 사유, 숙고, 인식 등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각을 안 하면 한 진영에 빠져 세상을 반쪽만 보게 된다. 그리고 감각적이고,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만족을 극복하여야 질적이고 지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감각을 극복한, 즉 숙고한 만족을 지녀야 진짜로 사는 것이다. 숙고하지 않으면, 감각적 만족에 그치고, 더 나아가 패거리를 만들고 그 진영에 빠지고 만다. 그러면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 되고,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된 삶을 살게 된다.
『데미안』의 또 다른 인물 피스토리우스는 "그렇게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건 어려워, 그건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어려움이라네"라고 말했다. 나를 향해 중단 없이 걷는 일은 힘든 여정이다. 오늘 사진은 어제 오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몇 시간을 쓰려고 산책을 했다. 거기서 만난 단풍이다. 깊어 가는 가을 오후의 거리는 가을 바람이 '없는 물감'으로 나무 캔버스에 색칠하느라 분주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나를 향해 부단히 걷는 일을 해 왔는가? 나는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했다. 나는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했다. 그래서 나는 탐욕스러웠고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빨리 좌절했다. 길가의 단풍들을 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가장 나 답게 살며, 주변으로부터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다. 물들어 가는 나무들처럼, 세상 만사 모든 일에 '순리'를 따르면 삶의 가치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단풍은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한 물을 비우면서 아름다워진다. 비우면 더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 가을에 배운다. 오늘도 나는 비우고 나를 해 불편하고 힘든 여정을 이어갈 생각이다. 단풍은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것이 아니라. 초록의 생명이 마지막 열정으로 뿜어낸 절정의 환희라고 한다. 그러니 늙는 것을 서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가을 어록>이라는 시에서 이기철 시인은 "백 리 밖의 원경이 근경이 되는/가을은 색깔을 사랑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시는 씨앗의 침묵을 기록하는 일/바람이 못다 그린 그림을/없는 물감으로 채색하는 일"이라 했다. 오늘 아침 시는 다시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에서 한 편을 고른다. 오늘의 화두와 어울리는 <나만의 생>을 공유한다.
나만의 생/홀리오 노보아 폴란코
그들은 꽃이게 하라.
사람들이 물 주고 거름 주고 보호하고 찬사를 보내지만
한낱 흙 화분에 갇힌 운명이게 하라
나는 차라리 못생기고 자신만만한 잡초가 되리라.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
높고 험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돌을 깨고 나와
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와 마주하며 살리라.
시간의 산맥 너머로, 혹은 불가사의한 심연 속으로
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다 주는
고대의 바닷바람에 흔들리리라.
비옥한 골짜기에 무지 지어 자라며
찬사를 받고 길러지다가
결국은 탐욕스런 인간의 손에 뽑혀 버리는
좋은 향기가 나는 꽃이기보다는
차라리 모두가 피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잡초가 되리라.
감미롭고 향기로운 라일락이 되기보다
차라리 강렬한 초록 풀 내음을 풍기리라.
강하고 자유롭게 홀로 설 수만 있다면
차라리 못생기고 자신만만한 잡초가 되리라.
나는 몇 년 전부터 아침과 오전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다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때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쓴다. 류시화 시인에 의하면, 오늘 아침 시의 원제는 <정체성>이라 한다. 저자는 뉴욕출신의 푸에르토리코인 사회학자라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생활 속 거리두기 1단계가 되자, 일상이 기지개를 켜면서 다소 나를 향한 걸음보다 세상에 관심을 두었다. 패거리에 끼지 못한 것인지, 안 낀 것인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패거리들의 내부가 상해 있고 와해가 임박해 보인다. 『데미안』의 마지막 장에서 데미안이 다시 나타나 패거리보다 진정한 연대를 강조한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대신 패거리 짓기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라고 이어 말한다.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 본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과 부조리는 근본적으로 부의 편중,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이 불평등은 공공성을 상실한 극소수 기득권층의 사익을 돕는 수단으로 타락해버린 국가권력의 오용 내지 남용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그런 적폐가 촛불집회 후 4년이 되어서야 정리가 된다. 어제 이명박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났다.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곧 동부 구치소로 수감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필요한 것이 '완전한' 민주 정치의 실현이다. 절차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다소 효율적이지 못하고, 시끄럽다 할지라도. 그리고 경제민주화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완전한 경제적 평등은 하나의 몽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할 경우,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자유로운 삶'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나아가 불평등한 사회는 국가 폭력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야만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요즈음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는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망한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공화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나는 공화주의야 말로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유일한 체제이라고 본다. 그런데 공화정의 최대 방해 자는 부의 균형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유층의 탐욕이다. 왜냐하면 부의 과도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격차를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귀족과 평민의 평등한 참정권을 전제로 하는 공화주의는 존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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