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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연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이, 새장 속에서 잘 얻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신"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정치인들의 오만방자(傲慢放恣, 남을 업신여기며 제멋대로 행동)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마디로 ‘권력 중독’ 때문이다.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으리라 착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고 정채봉 선생님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긴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장자』의 <인간세> 8장에 나오는 "들꿩 이야기'처럼, 즐겁게 살면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사는 방식에 힘을 실어준다. 나는 어제 산책길에서 그 들꿩처럼 동네 공원을 내 것처럼 즐기며 사는 사람을 봤다. "들꿩 이야기"는 이렀다.

澤雉十步一啄(택치십보일탁) 못 가의 들꿩은 열 걸음에 한입 쪼아 먹고,
百步一飮(백보일음)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지만,
不蘄畜乎樊中(불기축호번중) 새장 속에 갇혀서 얻어먹기를 바라지 않는다.
神雖王(신수왕) 不善也(불선야) 비록 기력은 왕성할지 몰라도 마음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신수왕(神雖王), 不善也(불선야)"의 해석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1) '神'을 기력으로, '王'을 왕성함(旺)으로, '善'을 즐거움으로 보아, "기력은 비록 왕성할지 모르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다."
2) 비록 왕처럼 대접을 받겠지만 신(神)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비록 연못 가에서 열 걸음 걷다가 모이 하나 주어 먹고, 백 걸음 걷다가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정도로 힘들고, 또 주위에 여러 가지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이, 새장 속에서 잘 얻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신"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삶을 즐길 중 아는 것이 양생(養生)의 필수 요건이라고『장자』는 말하고 있다.

나무는 삶의 질을 높이는 '양생(죽음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의 논리)'을 안다. 나무처럼, 자연에 기대 살면 된다.

나무/최창균

겨우내 침묵으로 서 있던 나무들이
이른 봄 일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나무기둥들의 색깔과 아주 다른
저 연녹색의 가느다란 우듬지를 보면
나무가 혀를 쑤욱 빼어문 듯 보인다
나무의 온 생각을 집중시켜 놓은 듯
쉴 새 없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허공을 길게 핥아나간다 그럴 때마다
허공은 파르라니 깨끗이 닦여
나무는 또 한번 세차게 발돋움한다
자꾸만 혀를 움직여 허공을 오른다
허공을 구부려 입 속에 넣는다
그렇게 나무는 자란다
혓바닥이 둥글게 말려 나이테를 이룰 때까지
혀가 굳어 생각이 깊어지는 나무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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