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아까운 봄날들인데, 하늘이 하루 종일 흐리더니, 늦은 오후부터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울다 지쳐 잠들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다시 우는 누군가처럼, 오늘 아침도 비가 그치지 않고, 굵게 내린다. 그런 씁쓸한 마음 속에서 아침에 든 생각은 나의 소명(召命, mision)은 무엇인가이다. 매주 수요일은 우리 동네를 아름답게 하는 길을 찾자는 아침 커피와 샌드위치 모임을 한다. 그래 일찍 나가야 한다.
동네를 돌다 보면, 출연연 연구소 정문에 걸린 이런 플래카드를 나는 만난다. "일 년을 기다렸다. 하청 꼬리를 떼고 정규직으로 전환해라" 아마 잘은 모르지만, 하청 기업에서 청소하는 미화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여 허드렛일을 맡기는 가 보다. 난 늘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생각할 때마다, 그 안에 있는 문화 유산이 있어서, 1초에 한 명꼴로 방문객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꾸준함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공공 건물을 잘 만들지만, 그 관리에 소홀하다. 몇 년 지난 공공 건물들 보면, 방치되어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가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대우하지 않고, 무시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나사를 방문하던 중 만났던 직원에게 직무가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영화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예상과 달리, 그의 직업은 천체 물리학자나 엔지니어가 아니라 환경 미화원이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운전기사들이 자신의 직함을 '안전 대사'로 바꾸어 부르기로 결정한 순간 일어났던 일을 연상시킨다. 운전기사라는 기능적 직무가 승객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시키는 소명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화원으로 일하는 분들이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는 동일한 동료로 보아주는 성숙된 의식이 필요하다. 좋은 일과 좋은 직업은 조금 다르다. 좋은 일이란 내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으며. 미래에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자신의 직업을 생계, 커리어, 소명으로 나누어 조사한 미국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자신이 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예상 외로 많다. 처우가 낮은 일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한 연구소의 모든 구성원은 나이와 직무가 달라도 모두 같은 일을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한다.
사람들이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셋이다. (1) 직업을 밥벌이 수단으로 보는 사람의 관점, (2) 직업을 경력과 성취감으로 보는 관점, (3) 직업을 소명의식으로 보는 관점. 비록 청소하는 직업이라도 지구, 아니 한 조직을, 한 기관을 지키는 일을 한다면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직업을 영어로 '콜링(calling)이라고도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의 소명(召命)이라는 것이다. 우리 말의 천직(天職)과 같은 말이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부터라도 더는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기여'하는 삶을 살려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그래 매일 매일 배우고, 글을 쓴다. 배우는 것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성장이다.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런데 실제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부 구경만 하고 있다. 배움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힘'이 시작되는 것이어야 한다. '익힘'은 그것을 다룰 수 있도록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강의를 듣거나 누군가로부터 배우면, 그 배운 것을 글로 써보고, 또한 일상의 삶 속에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익힘'을 반복하면 '나만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두고 '자유'라고 불렀다.
그러니 배움의 목적은 결국 '자유'를 위해서이다. 사실 자유는 그냥 주워지지 않는다. 내가 자유자재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배워 법칙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면, 그 때 나는 자유롭다.
비가 오는 아침이지만, 난 자유롭다. 그래 수요일 아침이면, 비가 와도 일찍 나간다.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히 세상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봄비/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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