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새로운 일상은 이미 시작됐다. 언제 부터인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챙기는 게 자연스럽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마스크가 없으면 좌불안석이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와 비슷하다. 일종의 마스크증후군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끝을 예상하고 전략을 짜면 안 된다. '뉴 노멀'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말한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 바이러스와의 동거 등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는 노멀(정상)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일시적인 혼돈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럼, 이제까지 우리가 알았던 정상적인 일상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질문해 본다.
일단 산업적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영화계의 극장 개봉 공식은 이미 깨졌다. 그리고 식당 서비스 대신 배달과 밀키트(조리만 하면 되는 가정 간편식)도 늘 것이다. 양육의 새로운 구도, 일과 생활의 재편, 소득과 소비의 재조정 등 각자에게 닥칠 파고는 높고 불길하다. 이 파고에 가장 먼저 노출될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도 과제다. ‘뉴 노멀’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 외에도, 뉴 노멀 시대를 준비하면서 토론해야 할 주제가 많다.
- 코로나19 이후 심화될 수 있는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 재난 기본소득은 필요한가?
- 향후 감염되는 전염병의 대응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건강의 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일자리다. 예를 들어, 앞당겨진 미래사회 적응을 위해 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민·관이 협력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규제 혁신을 도모한다면 경제, 교육, 보건, 안전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규범과 표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몰아쳐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이후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할 때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질문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은, 늘 마음에 담고 있다가, 어제 동네 공원에 차를 세우고 찍은 것이다. 사진은 빛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빛은 아침과 저녁의 햇빛이다. 작은 햇빛이 더 곱다. 나는 하루에 몇 가지 일을 하며, 나는 멀티 자아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는 글 쓰는 인문운동가, 낮에는 마을 활동가 그리고 저녁에는 와인을 파는 소믈리에(sommlier)이다. 매번 변신을 하지만,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단체 카톡에 올려진 지인의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그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자신의 하는 일이 하찮은 것인지 고귀한 것인지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어떠한 일이든 진심으로 헌신하고 노력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엔드류 매투스의 금언(金言)을 소개하였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기 일이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맡은 일에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의 소나무처럼.
나무를 위하여/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 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어지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은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란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탈과 바위너설에서 몸 움추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나무들아
이런 가운데, 오늘 아침은 '코로나 혁명'을 이야기 하려 한다. 혁명이란 이름 붙은 세계의 경직성을 부수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세계를 펼치려는 도전이다. "이 세계는 너무 낡았어요. 이제 낡은 이 세계를 버리고 저 세계로 넘어가야 해요. 그래야 사는 것처럼 살다 갈 수 있어요." 이런 식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너무 피상적으로 사용한다. 혁명은 아주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용어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혁명이란 쉽게 통제불능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쉬타인이 말했다. "혁명이 언제 끝날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혁명(革命)의 '혁(革)'자는 갑골문에서 소의 가죽을 정교하게 벗겨낸 뒤에. 뿔과 몸통 그리고 꼬리 부분이 남은 모양이다. 자신이 안주하던 소의 몸체에서 정교한 칼로 가죽을 베껴내야 한다. 특히 소가죽에 남아 있는 기름이나 털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그 가죽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질 수 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무두질'이라고 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차 없이 버리는 행위이다. 혁명, 무서운 말이다. 혁신(革新)이라는 말도 있는 데, 또한 무서운 말이다.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잔인한 일이다.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와 환희 속에서 벌어지는 상상 속 혁명과 달리, 코로나 19가 벌인 바이러스 혁명의 거리는 한산하다. 사람들은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조용한 혁명을 지켜보고 있다. 진보 세력인 좌파가 수십 년 동안 주장해도 이루지 못한 일들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걸쳐 해내고 있다. 오히려 진보 세력들의 주장이 소박해 보인다.
교육은 공공의 영역임을 우리는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개학이 연기되니 우리가 깨닫게 되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어 사회와 나누었던 일을, 홀로 감당하게 되면 개인의 삶도 멈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에 공동체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자선행위나 선의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필요한 필수적인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표준화된 최소한의 공공서비스가 없으면, 계층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공공의 서비스가 무너지면 저소득층이 먼저 위기이다. 입시경쟁에서 사설학원과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학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묻게 되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건강하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공교육의 존재가치는 분명함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대학 문제도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야 한다. 대학 강의를 비롯한 교육 서비스도 동영상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유튜브로 올라오는 강의들은 해당 대학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시청할 수 있다. 등록금과 학력이라는 울타리가 쳐진 지식이 세상 밖으로 평등하게 공유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대학에 내는 등록금이 문제이다. 등록금이 아깝다면, 사립대학을 국공립화하고, 통폐합한 이후 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혁명의 시기가 다가왔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혁명보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역설'이다. 지구가 조용해지고, 하늘이 맑아졌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지구의 진동을 줄이고 과거에 비해 조용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땅 속이 아닌 하늘에서도 역설적인 상황이 확인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인류의 활동이 멈추면서 대기의 오염도가 줄고, 이산화질소 농도도 급격히 감소하였다.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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