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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짧은 글, 긴 여운

1608.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4월 25일)

 

 

 

푸른 잎을 한웅 큼 훑어 꽉 쥐어짜면 연한 녹색물이 떨어질 듯한 산책길을 너무 걸어, 오늘은 하루 종일 피곤했다. 연두가 녹색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이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댄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시다.

 

오늘은 산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바로 본다는 것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깨달음과 실천의 시작은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리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시작하면,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 진짜 다이내믹하고, 한 번에 올인하는 기질도 있고, 굉장히 낙천적이긴 한데 근본적인 통찰 같은 건 약하다.

 

오늘 아침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 좋다.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으로 가지를 뻗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나무를 “빛의 광맥을 찾는” 광산으로 바꿔 놓는다. 허공은 너무 단단해 나뭇가지는 일 년에 “일 미터도” 자라지 못한다. 불쌍하게도 광부들은 어두운 나뭇가지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그 속에서 깊이와 향방도 모른 채 뼈 빠지게 일만 한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한데 멀리 있는 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절망스럽지는 않다."

 

다음 주부터는 바쁘다. 그리고 10시에 뱅샾의 문을 닫는 것도 해제된다. 어서 빨리 백신 접종이 많이 이루어져, 마스크 벗고, 5인 이상 모이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아침에 오늘 공유하는 아침 사진을 찍고 <나무와 광부>라는 시를 소환했다.

 

 

나무와 광부/이선식

 

나뭇가지들이 허공의 지층을 파고들어간다

허공은 얼마나 견고한 지 일 년 내내

일 미터도 전진하지 못한다

나뭇가지 좁은 갱도 속 광부(鑛夫)들은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갱도 속에 뼈를 묻었다

대낮의 칠흑 속에서 빛의 광맥을 찾는 나무다 나는

너는 멀고

가닿아야 할 깊이를 모르니

흰 날들의 향방이 캄캄하다

꽃,

해마다 단 한 번 허락된 등불을 밝혀 길을 찾는 측량

그리고 또 한 해 나의 완성인 너를 찾아

마지막 뼈를 꺼내 허공 속 갱도를 판다

 

 

지금부터는 오래 전에 적어 두었던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생각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1)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된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법정)

 

(2)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새로운 정보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을 정리하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차분히 정리해 보자. 반드시 새롭다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3) 파장(罷場)이 두려워 판을 접는 장사꾼은 없다. 봄날이 간다고 떨어지는 꽃잎을 피하는 대지도 없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를 노래했던 가수들의 서로 다른 음색만큼 봄날도 사랑도 반복 속에 새로움을 향한 기대를 품고 산다. 슬픔과 아픔을 피하자고 사랑을 멈추면 남는 것은 같은 것의 무절제한 증식과 음탕한 배설 뿐이다. 그러니 옷고름 씹어가며, 언 가슴 두드리면서 얄궂은 노래라도 불러야 한다. (박구용)

 

(4) 슬픔과 아픔은 즐기면 병이고, 누리면 예술이다. 아프거나 슬프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니 병만 잘 피하면 예술과 만날 수도 있다. 한숨 쉬고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다시 덧없는 사랑을 할 용기가 없는 이에겐 끝없는 사랑의 가상을 엮어가는 예술의 길이 남는다. 그 길에 귀 얹히면 언젠가 그이의 발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박구용)

 

(5) “물이 부족해야 땅 속에 있는 물을 찾기 위해서 뿌리가 안간힘을 다해 뻗어 갑니다. 그래야 꽃도 피지요. 화초가 꽃을 피우는 이유가 종자를 번식하기 위함 인 데 물이 부족해서 위기를 느껴야 종자를 번식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최초에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자라지 못합니다. 결핍이 창조를 낳는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사의 이치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지인의 페이스 북에서 펌)

 

(6)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닮아 없어지기를 원하노라.”(조지 휫필드)

 

다음은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의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글 두 개를 공유한다.

 

(1) 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말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분노·탐욕의 늑대와 사랑·소망의 늑대 말이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어린 손자가 묻자 추장이 대답한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2) 인간은 신에게 시험하지 말라고 빌면서 자신은 끊임없이 타인을 시험한다. 타인을 자신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함부로 재단한다. 《채근담》에서도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待人春風 持己秋霜)'고 당부했지만 거꾸로 행동한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든 티를 발견하는 데에는 귀신이다.

 

사람은 타인의 흠을 발견하면 무서운 재판관이 되려 하지만 정작 엄격한 재판관이 필요한 곳은 나의 마음 밭이다. (…)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현상들은 모두 나의 책임이다. 그러니 나를 시험하지 말라고 신에게 애원하지 말고 내가 신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다잡아야 한다. 탈무드는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정말로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전의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 이야말로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어제보다 좀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