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4월 21일)
매주 수요일은 시대정신을 살피는 날이다. 그러니까 시대를 읽는 날이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세 개다. 하나는 4·7 재보선에서 M/Z(밀레니얼+Z세대·20~30대)세대가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부각됐다는 현상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의 향배는 어느 정당이 M/Z세대를 잡는지에 달려 있다고들 주장한다. 그런데 교육무상화 등 10~30대를 겨냥한 핀셋 공약이 없다. 일자리가 없다. 반대로 일본은 M/Z 세대가 보수 자민당을 전폭 지지한다. 그 이유는 젊은 세대의 ‘지금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현상 유지 성향은 보수라기보다는 보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사회의 장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MZ 세대가 다수이지만, 격차 사회에서 현상 유지 성향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는 바람이 반영된 것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선 젊은 층의 이탈을 부추길 재료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말 뿐이고 부동산 폭등과 LH 사태를 거치면서 취업조차 또래 여성보다 불리해진 20대 남성의 ‘정권 비토’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는 내 개인적인 문제이다. 좀 삶의 양식을 바꾸고 싶다. 우리 동네 젊은 어머니(남현미)의 글이 대안이라고 본다. 나부터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좀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매일 새롭게 발전하는 급변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풍족하게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너무 많이 먹고 나서 다이어트를 못했다고 자책하고, 너무 오랜 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불면증과 두통을 호소하고 만성 피로를 불평하며 너무 많은 정보와 물질을 아이에게 쏟아 부으며 내 아이가 너무 산만하고 창의력이 부족함을 걱정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면서 책 한 권을 소개했다. 킴 존 페인(이정민역)의 <맘이 편해졌습니다>이다. 우리 동네 작은 책방에 주문할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 "우리 삶이 정말 더 단순화되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으며 지금 나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한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이 책의 정보를 보았더니, 이런 말들이 보인다. "넘치는 물건, 넘치는 선택, 넘치는 정보, 넘치는 속도라는 네 기둥 위에 지은 집에서 일상을 꾸리고 있지 않은가?" "휴식을 취하며 고요하게 보내는 순간은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일종의 자양분이다." "물건이 너무 많으면 아이는 자신의 세상을 깊이 있게 탐험할 능력과 마음의 여유를 상실하고 만다." "근본적으로 지루함은 창의력을 끌어내 주는 최고의 촉매제이다."
오늘 아침 시는 박영희 시인의 <접기로 한다>이다. 늘 좋은 시를 많이 모아 놓은 [먼. 산. 바. 라. 기.]님의 "카스토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분은 이런 덧붙임을 했다. "사람에게 서운할 때는 이렇게 속으로 뇌어보라고 한다. '그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서운한 것이 어디 사람 만이랴.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사람이든 세상이든 미워하고 원망하기 보다 한 번을 접고 그쪽 입장이 되어 볼필요가 있다. 한 번이 안되면 두 번을 접더라도 이해하고 감싸 안아 주자. 두 눈 딱 감아주자." 그런 마음에서 나 자신을 격리하고, 좀 더 수련을 하자. 이 시를 읽으니, 마음이 편하다. 주말 농장에 가 막 솟아오르는 생명들을 만나자. 오늘 아침 사진처럼 갈라진 가지를 쳐내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접기로 한다/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 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오늘 아침 세번 째 시대정신 읽기는 격차 사회 문제이다. 장사가 안 된다. 자영업자들의 희생 만을 강요한다. '끅' 하면 10시에 문 닫으라고 하고, 4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한다. 그게 벌써 4월 말까지 이어진다. 세상이 불공정하다. '바보처럼 살고' 있는 것인가?
몇 일전 강수돌 교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바보처럼 사는' 당신을 지지하며"였다. 강교수가 소개하는 바보들의 이야기는 실제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가 소개한 세 가지 이야기는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좀 공유한다.
(1) 친구 하나는 아파트 하나 잘 샀다가 3년만에 1억원 넘게 벌었다고 자랑한다. 또 다른 이는 길도 없는 산을 사더니 몇 년 만에 수억 벌었다고 잘한다. 보통 사람들은 논밭에서 땀 흘려도 일 년에 천 만원도 못 번다 나도 와인 숍 & 바를 하며 밤늦게 까지 일해도 저축은 커녕 유지 하기도 힘들다.
(2)"평생 양심에 가리낌 없이 사업을 해왔는데, 갈수록 힘들어진다. 원가를 조작하고 허위 서류를 만들고 예사로 자연을 파괴하며 인건비까지 쥐어 짜는 회사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나같이 근면 성실로 사업하는 이들은 이상하게 힘들어요." 강교수가 인용한 말이지만, 실제 나도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3)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사는 척 했구나 싶네요. 아이를 낳고 교육을 해도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그저 '공부 잘하라'고만 닦달해온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직장 일도 그 의미를 묻지 않은 채 오직 월급 오르고 승진하면 성공인 줄 알았죠. " 강 교수가 인용한 말이지만, 이 이야기도 내 주변의 젊은 아주머니들에게서, 아니면 또래의 어머니들에게서 자주 듣던 이야기이다.
나는 위의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실제로 들을 때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막막 했었다. 아닌 건 알겠는데 말이다. 은근히 내 깊은 속에도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으니 선뜻 대꾸를 할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강 교수의 글을 보고, 어떻게 사유하고, 대답해야 하는 지 좀 분명해졌다. "무엇이 알찬 삶이고 무엇이 헛된 삶인가? 이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바보’다. 아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존재, 즉 ‘좀비’다." 뜨끔한 강교수의 지적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왜냐하면 첫째 이야기처럼 부동산 투자·투기로 돈을 버는 것은 얼핏 인생에서의 영리한 성공으로 보이나 실은 불로소득만 노리며 사회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또 둘째는 부정부패나 상황 조작, 착취·수탈 등으로 혼자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걸 성공이라 보는 것인데, 겉으로는 성공이나 실은 파탄을 부른다. 둘 다, 일확천금을 위해 영혼을 판다는 점에서 ‘파우스트 계약’일 뿐이다. 그런 게 잘못인 줄 모르고 마치 정상처럼 보는 것, 이게 좀비 개인, 좀비 사회의 실체다."
부자가 되기만을 삶의 성공이라 착각하면 인생을 잘 못사는 것이다. 특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이런 가치관으로 살면 오히려 우리를 억압하는 자본만 이득을 보고 더 강화될 뿐이다. 그 결과는?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사태, 부동산 폭등, 미래 불안, 기후 위기, 미세 먼지, 방사능 재앙 등이 우리 삶을 덮치는 게 그 대가다. 강교수도, 여러 미래학자들처럼, 말한다. 2030~2050년 경 지구와 인류는 총체적 재앙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그는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보며. "어쩌면 인류가 멸망해야 지구의 상처가 치유될지 모른다. 거시적 비관의 근거다. 그러나 미시적 낙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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