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10일)

오늘은 추석이다. 추석의 순 우리 말은 '한가위'이다. 이 '한가위'에서 '가위'는 '가운데'를 의미한다. 음력 8월의 한 가운데, 혹은 가을의 한가운데인 8월 15일을 나타낸다.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 혹은 가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다. 추석(秋夕)은 말 그대로 하면 '가을의 저녁'이다. 추석을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이라고도 한다. 희한하게 추석 무렵이면 날씨도 가을이 된다. 올해는 한가위가 좀 이르다. 한가위날, 즉 음력 8월 15일에 뜨는 달이 가장 크고 밝다고 한다. 태양과 달리 달은 오래 전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태양은 항상 둥근 형태를 유지하지만, 달은 한 번 둥근 형태를 보여주고 전기나 촛불이 없었던 고대에는 둥근 달이 유일하게 빛이 되어 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년 중 가장 밝고 큰 음력 8월 15일은 고대부터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어 자연스럽게 명절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추석 보름달을 '중추망월(仲秋望月)' 또는 '중추명월(仲秋明月)'이라고도 했다. 어릴 적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추석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의 신비로움에 이끌렸기 때문이리라. 보름은 해와 지구, 달이 일직선이 되는 시기다. 하지만 달은 타원 궤도를 돌기 때문에 추석 당일 밤 완벽하게 동그란 보름달을 보기가 쉽지 않다. 대개 추석 하루 이틀 뒤 에야 온전한 원형이 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올해 추석 당일 밤에는 온전한 형태의 진짜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라고 한다. 오늘 저녁은 꼭 달을 보고, 한 해의 삶을 반추하고, 다시 '건너 가기'를 준비할 생각이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한가위 명절에 달이 보름달인 이유는 더 이상 자신만만하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살펴보고 소멸시키라는 시기이다. 보름달은 자신이 이제 초승달을 향해 자신을 변신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보름달의 충만한 원을 유지하려 하는 오만함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만(傲慢)은 세상의 심판자인 시간을 거슬리겠다는 몸부림이며, 시간을 멈춰 영생하겠다는 망상이기 때문이다.
한가위의 보름달은, 우리 인간에게 이제 덜어 낼 준비를 시키는 때이다. 덜어내는 행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덜어내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걷어 내야 한다. 덜어내는 행위 없이, 새롭고 참신한 시작은 없다. <창세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맨 처음에,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했을 때"라는 종속절로 시작한다. 여기서 '창조하다'라는 단어는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잘 못 번역한 것이다. '창조하다'는 전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가 되었지만, 히브리어로 '바라'라는 말은 '덜고 덜어 더 이상 빼낼 수 없는 상태로 만들다'란 의미라 한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창조는 자신의 삶에서 쓸데 없는 것,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지혜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과거에 의존하는 부실한 것을 걷어내거나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의미는 "처음에, 신이 혼돈으로 가득한 하늘과 땅에서 쓸데없는 것을 걷어 내기 시작했을 때"란 의미이다. 매번 읽을 때 마다 좋은 생각이다.
우주의 원리는 균형(均衡)이다. 올라간 것은 내려오고, 내려간 것은 퉁겨져 올라오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아레떼(德)는 인간이 추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건 극단을 피하고 그 중심을 잡는 일이라고 했다. 용기는 만용과 성급함의 중간 어디이며, 절제는 낭비와 인색의 가운데이다. 그 가운데를 찾으려는 마음이 중용(中庸)이다. 중용의 존재를 배운 적도 없고, 중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극단의 유혹에 빠진다. 왜 유혹에 빠지냐 하면, 자신의 보 잘 것 없는 정체성이 보상받기 위해서는, 자화자찬이 특징인 극단적인 무리에 속해, 자신의 쓸모를 끊임 없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우가 상대방에겐 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좌와 우 같은 명칭을 가지고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행위는, 열등감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속임수일 뿐이다. 나부터 한 진영에서 나올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와 인간의 삶을 두 개로 구분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개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런 구분은 생각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삶을 조절하는 중요한 가치와 해악의 구분은 모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과 악의 경계는 희미해서, 그것은 구분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일 A라는 사람이 악인이라면, 그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그 사람에서 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선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높은 것이다. 단지 51% 대 49%일 수도 있다. 또는 B라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으로부터 나쁜 요소들을 제거하길 힘쓰고, 선을 지향하는 과정 중에 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두개의 대립되는 가치의 정도와 경중을 깊이 관찰하고 측정하는 과정을 '쎄오리아(theoria)'라고 했다. 이를 우리 말로 하면 '관조(觀照)'이다. 이것은 사물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어제의 관습대로 보지 않고, 그 대상 자체로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 그리스어는 영어의 '씨오리(thory)'가 된다. 한국 말로는 '이론(理論)'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론은 '한참보기'란 인내를 통해, 그 대상 그 자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섬광을 포착하는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항상 제 3자가 되어 관찰하는 행위를 최고의 삶으로 여겼다.
오늘은 성묘를 다녀온 후, 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저녁에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맨발 걷기를 하며, 보름달을 맞이하며, 나를 추 스릴 생각이다. 추석 아침이면 생각나는 시이다. 추석 명절이면 어머니의 선물은 빨간 내복이었다. 마치 빨간 내복 하나면 혹한의 겨울도 너끈히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빨간 내복의 선물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 어머니가 보고싶다. 그래 그 사나이는 "풀빵"을 먹다가 목이 멘다. 오늘 아침 사진은 이틀 전에 찍은 거다. 저 달이 오늘 보름달이 되는 거다.
빨간 내복/공광규
강화오일장 꽃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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