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긴 연휴의 추석 전이지만, 오늘도 흥미로운 두 개의 강의가 있다. 오후에는 둔산 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에서 <초연결 시대의 인간을 말하다>라는 연속 강의 10회 차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함께 읽는다. 이 책은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린 반(反) 유토피아적 풍자 소설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이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유리병 속에서 보육 되고 부모도 모른다. 그리고 지능의 우열만으로 장래의 지위가 결정된다. 과학적 장치에 의하여 개인은 할당된 역할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도록 규정되고, 고민이나 불안은 정제된 신경안정제("소마")로 해소한다. 옛 문명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야만인 존은 이러한 문명국에서 살 수 없어 자살하고 마는 줄거리이다.
이 책은 과학 기술의 문제가 하나의 사회 안에 얽혀서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킬 수 있음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지만 복잡한 사고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부담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과학 기술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 인간다운 삶의 조건, 기술의 부정적 발전에의 경계, 사회의 구조 등 폭넓은 문제가 쏟아진다.
이젠 종강으로 갈수록 초연결 시대 아래의 '포스트휴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 인간을 넘어선 초인간의 포스트 휴먼 시대를 대비해 휴머니즘에 이은 포스트휴머니즘이 논의되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꿈꾸고 도전한다. 그리고 돌아 보며 절제하는 것이 인간이다. 날개를 달고 욕망의 창공을 날아올랐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이카루스는 절제를 잃고 태양에 가까이 간 대가로 날개를 잃고 추락하여 목숨을 잃었다. 날개를 장착한 기술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문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카루스의 비상을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정신, 휴머니즘의 두 날개가 필요하다. 이카루스를 구해야지, 날개만 만들 수는 없다.
영국 철학자 러셀에 의하면, 20세기 초 과학은 상품 총생산 증대, 더 파괴적인 전쟁, 예술적, 보건적 가치가 있는 것을 사소한 눈요깃거리와 맞바꾸는 것의 목적에 쓰였을 뿐이라고 했다.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허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는 세계는 이렇다.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걱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 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그러나 야만인(소설과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인물) 존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예술의 위대함을 동경하고, 신을 숭배하며 타인에게 우정과 사랑을 느끼던 인물이다. 그가 보기에 소설 속의 신세계 문명인들은 쾌락을 주는 물질적 조건에 안주하면서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성을 상실한 바보들이었다. 결국 그는 총통에게 안락함 대신 자유를 원한다며, 자신에게 불행해질 권리, 온갖 고민에 시달릴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며 문명 세계를 떠난다.
이 "흐린 날" 아침에, 인간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이성복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상적 삶과 예술은 거꾸로 간다. 예술은 낮술이며 경계에 서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반면,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 삶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존 스튜어트가 말했던 것처럼,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사람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흐린 날" 속에도, 나는 함께 '낮술'하는 친구들이 있다. 어제는 그들이 내가 사는 동안 가장 따뜻한 선물을 보내왔다. 이게 사람 사는 일 아닌가? 저녁에는 <오네뜨와인아카데미> 두 번째 만남이 있다. 와인과 요리와 조화, 그것도 예술이다. 오늘은 세 개의 다른 레드 와인 품종을 갖고 실험하고 즐긴다.
흐린 날에는/나희덕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은 떨어져 나가지 않을 만큼만 바람에 몸을 뒤튼다.
저렇게 매달려서, 견디어야 하나
구름장 터진 사이로 잠시 드는 햇살
그러나, 아, 나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다.
큰 빛을 보아버린 두 눈은
그 빛에 멀어서 더듬거려야 하고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
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그래야 맞다, 나부끼다 못해
서로 뒤엉켜 찢겨지고 있는
저 잎새의 날들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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