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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중은 오지 않는다/안국훈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10일)

오늘 아침은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를 만난다. 그는 악명 높은 네로의 과외 선생이자 고문이었고, 네로는 그에게 자살을 명령하였다. 그는 자신이 흠모하는 소크라테스처럼, 가족을 불러 놓고 의연하게 자살하였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네카는 소위 로마세계에서 ‘호모 노버스(homo novus)'로 등장하였다. 전통적인 로마의 귀족가문이 아니라, 로마 식민지인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고모의 손에 이끌려 로마로 이주해왔다. 그는 당시 로마 귀족들이 통치자가 되기 위한 과목인 문학, 그리스어, 그리고 수사학을 배워 두각을 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금욕주의와 채식주의를 실행하는 ‘섹스티 학교(School of Sextii)'에 입문하여 삶을 배웠다. 그는 어려서 부터 약골이었다. 천식으로 고생하였고 특히 20살에 걸린 결핵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그는 다시 고모를 따라 이집트로 이주하여 30살에 될 때까지 요양하였다. 그의 고모부 가이우스 갈레리우스는 당시 이집트를 통치하는 로마 장관이었다. 그는 기원후 31년 로마로 돌아와 로마 황제의 꿈을 꾸며 출세가도의 길을 차근히 밟기 시작하였다.

세네카는 당대 가장 훌륭한 법률가이자 연설가였다. 그의 특출한 실력은 오히려 그를 모든 사람의 시기와 질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로마황제 칼리굴라(제위 37-41년)는 그의 인기를 시기하여 그에게 자살을 명령한다. 칼리굴라 측근들은 세네카가 결핵과 천식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여, 겨우 생명을 부지하였다. 그 후에 등극한 클라우디우스(제위 41-54년)도 세네카를 자신의 정권을 노리는 정적으로 여겼다.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메살리나(Messalina)는 세네카를 선왕 칼리굴라의 여동상 율리아 리빌라(Julia Livilla)와 간통하였다고 거짓 기소하였다. 클라디우스 황제는 세네카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원로원으로 구성된 법정을 그를 코르시카 섬에 8년 유배형을 내렸다. 똑똑하고 특출한 실력이 있는 그를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다.

세네카는 코르시카섬 최북단 캡 코르세(Cap Corse)라는 곳에 있는 ‘루비’라는 마을에서 황량한 세월을 보냈다. 그는 가파른 해안 위의 한 망루에 감금되었다. 이곳은 1,2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주변은 바위 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로마에서 유배 온 세네카를 푸대접하였다.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지옥과 같은 섬에 감금된 세네카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그곳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41년에 쓰기 시작한 <분노에 관하여(De Ira)>라는 책이다.

그러나 세네카가 당한 유배는 오늘날까지 스토아 철학자로, 작가로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신의 선물이었다. 그는 유배 온 다음 해인 42년에 어머니 헬비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이 편지를 읽는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환경은 최고 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오늘 하루도, 유배지에 있는 세네카처럼,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선물로 알고,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하며 보낼 생각이다. 우리는 약간의 성공을 얻으면 오만 해진다. 그리기에 영원히 성공한 사람도 없고 영원히 실패한 사람도 없다. 긴 시간에서 안에서 인생을 조망하면, 우주의 섭리가 조화롭듯이, 인간의 흥망성쇠, 역시 공평하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 일이다.

20세기 초, 인류는 과학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경험하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신을 과학으로 대치하면서, 현대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자랑하던 최첨단 과학으로 인류 최대 비극인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서로를 죽였다. 시대는 현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이 삶의 문법인 원시로 돌아갔다. '코비드-19'를 통해, 우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참 동안 이 포로 생활을 지속할 것이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를 무어라고 정의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의존적인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오늘 시처럼, "나중은 오지 않는다." 뭐든지 "지금 당장 해야"한다.

나중은 오지 않는다/안국훈

나중에 만나자
나중에 배울 거야
나중에 술 한 잔 하자지만
결코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승진하면 밥 살게
집을 마련하면 도와줄게
나중에 꼭 해준다고 하지만
막상 받은 적 없다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서울 게 없고
나중에 하겠다는 일
끝내는 걸 보지 못했다

아 그래
사랑도 나중은 없을 거야
사랑하려면
지금 당장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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