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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건들대 봐

작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이다.

123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실 '고강도' 사회적, 아니 물리적 거리 두기 기간이 오늘이 끝인데, 주변에서는 좀 더 그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나는 사는 게 조금씩 힘들어진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니, 프리랜서의 삶은 거의 한계에 이른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에 평소 4만 명이 들어가는 성당의 텅 빈 공간에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세계인을 위로하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희망을 위한 음악(Music for Hope)’ 콘서트를 유튜브로 들었다. 특히 성당 밖에서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신 놀라운 은총! 부활의 큰 희망이었다. 모니카 그뤼터스 독일 문화부 장관은 “창조적인 사람들의 용기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하다”며 “지금 우리에게 예술가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라고 강조하였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유튜브로 음악을 틀고, 블루투스에 연결하여 듣는다. 대단한 것은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알아서 들려준다. 그리고 SNS로 많은 이들과 쓴 글을 공유한 후, 나는 내 농장 <예훈>에 간다. 그 곳에 가면 바람을 만난다. 어제는 비가 온다고 해, 철 이르게 고구마를 심었다. 그런데, 비가 안 왔다. 그래 오늘 아침은 바로 물을 싣고 나가, 야채와 고구마에게 인사를 하고, 바람과 함께,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건들대 볼" 예정이다. 아침 사진은 꽃이 진 목련 나무이다. 지난 글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건들대 봐/김형영

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 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 보라고.

어제 이야기 했던 고갱의 질문과는 다르게 한근태는 자신의 색, <고수들의 질문법>에서 다섯 개의 질문을 한다.
- 나를 채우는 질문
- 관계를 잇는 질문
- 일의 방향을 정하는 질문
- 리더를 위한 질문

목차만 보아서는, 다소 실용적인 책 같다. 소제목들을 보면,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모르고 지나가는' 지혜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제1장의 '나를 채우는 질문'의 시작은 우리 자신을 개관적인 모습으로 제대로 알 수 있는 질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알기 어렵다. 나 자신을 3인칭으로 놓고, 자신을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했던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누구나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나'가 진정 원하는 모습인가? "만약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변화'라는 단어의 풀이가 마음에 든다. '말 이를 련(䜌)'과 '때릴 복(攵)'의 합성어로 푼다. 그러니까 변화란 같은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서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근태 저자가 내린 변화의 정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동의한다. 세 개의 키워드에 주목하고, 그에 맞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주장한다.
- 간절히 원하는 것: 나는 정말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가? 변화에 대한 절심함이 중요하다.
- 고통 감내: 변화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고통을 싫어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만큼의 고통을 감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새로운 습관: 새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는가?

얼마동안 나는 프리랜서로, 들어오는 일, 꼭 해야 하는 일만 하고, 내가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 때, 저자처럼, 나는 아침에 일어나도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고, 활기가 사라지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몇 년 전부터 아침에 <사진 하나, 시 하나>를 꾸준하게 써오면서, 목표를 찾았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저자에 의하면, 목표는 '네비게이션'과 같다고 했다.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재앙이다. 재앙을 영어로 '디재스터(disaster)'라 한다. 이 단어는 '사라지다'라는 'dis'와 '별'이란 뜻의 'aster'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재앙이란 '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침반이 없던 옛 시절에는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별이 보이지 않으면 재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목표가 없다는 것도 재앙이다.

목표는 1) 삶에 동기를 부여해 주는 최고의 수단이다. 목표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그 목표를 위해 일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2) 목표는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3) 목표는 우리 자신을 지켜 준다. 우리 주변에 부정적인 정보가 넘쳐나지만, 목표가 명확하면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는 우리들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한다. 우리들의 가능성을 실현하게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해보니, 내 목표가 희미하다. 구체적이지 않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 질문에 답을 해보아야 겠다.

그리고 좋은 질문을 하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나는 다양하고 유연한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가? 아니면, 나는 한 가지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가? 세상에 좋은 관점과 나쁜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직된 관점과 유연한 관점, 한 가지 관점과 다양한 관점만이 존재한다. 기왕이면, 우리는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자유자재로 관점을 바꿀 수 있으면 삶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시인들이 그렇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창의적인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질문에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칼 포퍼에 의하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 했다. 문제 없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문제들은 답을 요구한다. 답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찾나? 그 답을 찾으려면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를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본다.
▪ 질문이 없으면 답이 없고,
▪ 질문이 잘못되어도 답이 없다.
▪ 게다가 잘 보이지 않던 답도 질문을 바꾸면 길이 보이고,
▪ 같은 듯 보이는 문제도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다른 답에 이른다.

좋은 질문은 관점을 전환시킬 수 있는 질문이다. 나 만을 위한 질문에서 벗어나 상대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 앞에서 결정을 하여야 한다. 인생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좋은 질문은 시간의 축을 바꾸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늘 현재 지점에서 고민하고 결정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결정은 현재를 기준으로 내려지지만, 그 결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미래 시점에서 지금의 결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여기서 멈추고, 내일 질문법에 대한 글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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