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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

205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4일)

 

오늘은 노자 <<도덕경>>을 읽는다. 제33장을 읽을 차례이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는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으로 시작하는 이 장에서 노자는 '지(智)'와 '명(明)'을 구분한다. '지'는 대립적 시각으로 사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지적 능력을 일컫고, '명'은 통합적 시각으로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일컫는다. 도를 지각하는 것은 후자를 통해서다. 왜냐하면 도란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와 구분된 객체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며, '나를 안다는 것'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아는 것은 지에 해당되고 나를 아는 것은 '명'에 해당된다. 도올 김용옥은 이 '명'을 불교에서 말하는 '오(悟)', '깨달음'으로 풀이를 한다. 

최진석 교수는 제3장에 나오는 '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워주며, 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주고, 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虛基心, 實基腹, 弱基志, 强機骨,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는 문장을 가지고, '지인(知人)'과 '자지(自知)'를 설명한다. 비우고 약화시켜야 할 마음과 의지는 이미 설정되어 있는 가치 체계라는 그물망을 통과하여 외부로 향하고 있는 것들이다. 반면에 아직 인위적 가치의 지배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의 상징으로서의 배와 뼈대는 채우고 강화시켜야 한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는 거다. 마음과 의지가 '지인'의 범위 안에서 잡히는 내용이라면, 배와 뼈대는 '자지'의 범위 안에 있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세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는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自勝者强(자승자강)"을 말하면서, 유력(有力)과 강(强)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나와 분리된 객체로서 타인을 이기는 것은 '유력'이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강'이라 한다. 타인을 통제하는 힘인 권력은 '유력'의 범주에 해당되고, 마음의 갈등을 스스로 다스리고 조절하는 힘은 '강'에 해당된다. 

'힘'이란 말의 영어는 두 가지가 있다.  '포스(force)'와 '파워(power)'. 프랑스어로는 'la force'와 'le pouvoir'라고 한다. '포스'가 '명함의 힘'이고, '파워'가 '발가벗은 힘'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어의 le pouvoir는  명사형으로 '힘, 능력, 역량'을 뜻하지만, 동사 쓰일 때 pouvoir는 영어의 can처럼 조동사로 쓰인다. '~을 할 수 있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 명사형, le pouvoir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이 된다. 이게 '발가벗은 힘'이 아닐까? 저자는 박창수의 『임파워링하라』 에서 포스와 파워를 이렇게 구분한다고 소개하였다. 포스는 외부의 힘과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물리적인 힘이라면, 파워는 자기 자신이 영향을 주는 힘이며,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는 포스가 아니라, 파워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참나무>처럼, 이 더운 여룸에 "발가벗은 힘'을 기르고 있다.  "발가벗은 힘"이란 외부의 힘, 명함, 학력 그리고 가족 등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야생(野生)에서 자신 있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自勝者强(자승자강)", 자신을 이기는 사람의 힘이 이 '발가벗은 힘'이 아닐까?


참나무/알프레드 테니슨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잎사귀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 되어 선
저 발가벗은 힘을


많은 이들이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 <참나무>를 좋아하고, 여러 강의에서 인용된다. 이런 식이다. "나뭇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는 자신의 몸을 가릴 것이 없다. 한때 무성했던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던 새, 나무 그늘 밑에서 쉬던 사람들조차 모두 떠나고 없다. 오로지 자신의 발가벗은 몸, 둥지와 가지민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위나 배경의 도움 없이 인간 아무개가 갖고 있는 본래적인 힘과 의지 '발가벗은 힘'으로 우뚝 서야 하고, 그 것만이 진정한 내 것이다." (윤석철) "우리는 스스로 내면에 있는 '참나'를 직시하고 자신의 허울, 즉 외모나 집안, 학력 등을 다 벗어버린 상태에서의 내 강점을 일컬어 '발가벗은 힘'이라고 합니다."(박창규) "'발가벗은 힘'의 반대말은 아마도 '명함의 힘'일 것이다."(이재형)

노자 <<도덕경>> 제33장의 그 다음 문장은 "知足者富(지족자부)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이다.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강한 사람, 행함을 관철하는 자의 행동에는 지조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족(知足)은 나를 아는 것이고, 강행(强行)은 나를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족하면 부유하다고 했고, 강행에는 지조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강' 자는 억지로 하다는 의미도 있다.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를 '강한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뜻을 이룬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억지로 실천하고 무리해서 추진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특정한 방향으로 향한 의지와 목적이 설정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거나 거기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러나 자신을 알기 위한 수행방법 중 명상(冥想)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고요한 상태에서 내면에 집중하는 훈련을 거듭하면 몸속에 쌓인 스트레스나 잡념들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다.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으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명(明)을 얻어 강(强)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이다. '이런 사람은 제자리를 잃지 않으니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혀 지지 않으니 장수한다'는 거다. 여기서 "기소(其所)"는 '근원적인 도의 자리'로 읽으면 된다.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는 쉽게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마친다'로 읽으면 된다. 그러니까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야 제 자리를 잃지 않고 오래 간다. 외물의 공격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죽은 후에도 잊혀 지지 않으니 진정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다. 

최진석 교수는 '자신이 자리할 곳을 잃지 않는 자가 오래 간다'고 풀이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거나 부여 받은 권리를 오래 유지하지 모사는 까닭은 대개 자신이 처한 위치를 망각하거나 넘어서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할 위치가 아닌데, 특정한 명분에 기대서나 아니면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연유로 함부로 하다가 대개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말이라는 거다. 실제로 제32장에서 노자는 '한계를 아는 것이 위태롭지 않은 까닭(知止, 所以不殆, 지지, 소이불태)"라 했다. 

이 장의 구도는 얼른 보면 구체적인 효과를 바로 보여주는 것 같은 "지인(知人) - 승인(勝人) - 강행(强行)"의 방식보다는 조금 유약해 보이거나 소극적인 것 같지만 "자지(自知)" - 자승(自勝) - 지족(知足)"의 방식이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위대한 효과를 담보해 준다는 거다. 일상을 살아가는 좋은 통찰을 주는 내용이다. 노자 철학의 역설이다. 제7장을 다시 읽어 본다.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邪(비이기무사야)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 이 말은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뒤에 두기에 앞설 수 있고, 몸을 밖에 둠으로써 몸을 보존한다. 사사로운 마음을 앞세우지 않기에, 능히 자신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다르게 해석해 본다. '성인은 그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앞서게 된다. 그 자신을 도외시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 그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능히 그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노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후기신(後基身)이나 외기신(外基身) 혹은 무사(無私)가 아니라, 바로 신선(身先)이나 신존(身存) 그리고 성기사(成基私)이다. '후기신'이나' 외기신' 혹은 '무사'는 '신선'이나 '신존' 그리고 '성기사'를 차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능할 뿐이다. 노자적 삶은 소극적이고 모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앞서게 하기 위하여 그 몸을 뒤로 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를 이해하여야 이런 삶의 자세가 이해된다. "무위하면 되지 않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단지 이렇게 해석하면 부족하다. 세상사에서 어떤 욕망도 품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을 '무위'로 보로 보는 것이 아니다. 노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위'보다도 '되지 않는 일'이 없는 "무불위(無不爲)"의 결과였다고 본다. '무위'라는 지침은 '무불위'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도덕경>> 제22장을 보면 안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자를 구부리고, 덜어내는, 헐리는, 적은" 것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사실 노자는 온전하고 꽉 채워지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도덕경>> 제3장에 나오는 "위무위 칙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에서, ‘무위’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주의 순환이나 사시사철의 변화와 같이 정교한 원칙의 표현이다. '무위'라는 말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과중하게 느낄 정도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위'는 정교한 '인위(人爲)'이다.

제33장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自勝者强(자승자강) :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세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知足者富(지족자부)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 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강한 사람, 행함을 관철하는 자의 행동에는 지조가 있다.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이런 사람은 제자리를 잃지 않으니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혀 지지 않으니 장수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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