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각 집단들이 정치를 통해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장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의 내 담벼락에 4년 전 글이 <과거의 오늘>이라는 항목 속에 남아 있다. 그것들을 다시 읽고, 한 곳으로 모아두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질문의 답과 지혜를 얻는다. 오늘 아침 그 한 가지를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의 이름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 혹은 보수 세력 지지자이기도 하고, 정당 당원이기도 하고, 지역 단체 회원이기도 하고, 경영자이면 경영자 집단, 노동자이면 노동조합 구성원이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결사체들이 시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튼튼해 지고 건강하다. 그만큼 삶의 수준도 높아진다. 그러니까 어떤 결사체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각 집단들이 정치를 통해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장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다. 또 한가지, 사는 일이 바빠서 결사체에 참여할 수 없으면, 후원으로 그 결사체를 지원해야 한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즉 확증편향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생각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당한' 생각을 실없이 반복하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나는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정한 그릇에 갇히면 군자가 아니다. 군자라고 불리는 수준 높은 사람은 모든 일에 통하는 근본을 지키지 제한된 범위에서 움직이는 기능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소인비이불주(小人比而不周)"라는 말이 이어진다. "군자는 친하게 지내되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한다."는 말이다. 두루두루 남들과 친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기 라인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군자이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면서 편파적인 패거리를 찾지 않는다.
군자라고 불리는 시선이 높은 사람은 근본을 지켜서 널리 통하기 때문에 태도는 넓고 매우 공적이다. 그러나 사유의 수준이 낮은 소인은 기능적으로 같은 주장을 공유하는 자들끼리 뭉쳐서 패거리에 자신을 가둔다. 패거리는 공적이기 보다는 사적이다. 나는 군자가 아니라고 되는 대로 살고 싶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좀 더 성장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과 세상을 궁금해 하여야 한다. '우리'들끼리 공유하는 정해진 주장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오는 데에 방해가 된다, '나'에게만 있는 호기심이 주도권을 잡아야 질문이 튀어 나온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나의 "기억"을 살피면, 나는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함부로 돌멩이처럼." 아침 사진은 비에 젖고 있는 능소화이다. 님이 그리워 담을 넘어 왔는데, 비가 내린다. 그래 나는 산책하다가 능소화를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 소녀의 마음을 기억하려 한다.
기억/문정희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
때때로 날은 흐리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
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
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
아침을 음악으로 열어 보아도
사냥꾼처럼 쫓고 쫓기다 하루가 가고
그 끝 어디에도 멧돼지도 없었어
생각하니 나를 낳은 건
어머니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어머니가 생명과 함께
알 수 없는 검은 씨앗을 주실 줄은 몰랐어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
함부로 돌멩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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