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윌슨은 자신의 책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지만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우리는 자기가 사는 지방에서 나오는 제철 재료를 써서 만든 전통음식보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재료를 써서 표준 조립법으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더 자주 먹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이 텅 빈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생활은 부유해졌지만 식단은 가난해지고, 높아진 삶의 질에도 음식의 질은 나빠졌다. 음식에 관련한 불행이 결핍이 아니라 풍요에서 비롯된다는 역설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먹을 게 많아졌다고 더 행복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행복감이 더 커진다는 믿음은 잘못이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자신의 책,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는 개념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행복이 줄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택지가 많으면 선택이 어렵다. 최적의 상태에 못 미치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현실에 딱 맞는 개념이다. 음식 선택의 폭이 넓어진 대신 식문화는 난잡해지고, 우리는 해로운 음식을 더 자주 먹는다. 부적절한 식단을 마주하고 나쁜 음식을 삼키며 불행해지는 것은 풍요의 시대가 낳은 역설이다.
코로나-19는 전례 없는 수준의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 이런 시대 선택의 역설을 피하기 쉽지 않다. 가장 큰 휘험은 '선택을 잘 할 수 있다는'는 과신이고, 가장 큰 유혹은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욕심이다. 아니면 좋은 선택의 기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미래의 선택지를 줄이는 선택을 해놓는 것이다.
바스 카스트의 책 『선택의 조건』도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누구를 사귈 것인가' 라는 선택에 관해 말하자면, 연애를 하면 할수록, 상대를 바꾸면 바꿀수록 만족도는 더 낮아진다고 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이런 현상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원하는 경험이 아닐 때, 사람들이 재빨리 다른 경험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맘에 안 드는 렌터카는 되돌려주고, 형편없는 음식이 나온 레스토랑에서 나와 버리고, 말 많은 SNS 친구는 바로 차단하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바꿀 기회가 없는 경우에만 기존 관점을 바꾼다. 도망가거나 취소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드디어 관점을 바꾸고 지금 일어난 일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선택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는 게 꼭 좋은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종종 뷔페 식당의 다양한 음식보다 전문점에서 끓여 낸 칼국수 한 그릇에 더 만족스러워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더 늘어난 선택의 자유가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다져오지 않는다. 꼼꼼하게 선택하는 이들일수록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을 더 많이 질문한다. 더 나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더 후회하는 삶을 산다.
그러니까 음식 선택의 범위가 커졌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건강한 식사와 식사법을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과다한 정보를 주는 광고나 개인의 삶에 파고드는 소셜미디어와 자기 자신을 차단해야 한다. 그 다음엔 자신의 감각을 이용하여 음식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식단을 찾아야한다. 한 끼를 찾아 먹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부르는 감각의 향연이다. 패스트 푸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페스트 푸드란 단순히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그렇다. 이 방향을 바꾸려면 슬로 푸드가 답이다. 나는 시간이 금이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통제하는 고도의 경제 성장기 한복판에서 자랐다. 그래 밥을 빨리 먹고, 냉동 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나는 슬로 푸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슬로 푸드란 단순히 패스트 푸드에 반대한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현대인들의 생활방식과 오늘날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총체적으로 다시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이런 속도에서 우리를 구해내야 한다. 슬로 푸드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말하자면 미식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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