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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에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와 분리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어제부터 시작된 나의 담론이다.

마르셀 뒤샹 작품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지난 12월 22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내일 끝난다. 그래 어제 서울을 다녀왔다. 그의 작품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감상하기 어려운 예술가이다. (1) 초기의 입체주의 회화 (2) 기성용품을 미술의 세계에 끌어들인 레디 메이드 (3) 말년의 설치 미술.

우리가 '본다'고 할 때 보는 행위는 여러 층위가 있다. (1) 그냥 본다 (2) 살펴본다 (3) 관찰한다. (4) 관조한다. 등등이다. 그래 미술관에 가면, "아는 만큼 본다." 세상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제 나의 사유에 대해 몇몇의 댓글들을 보면, 자기가 보는 것에 대한 의심이 없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자기 생각은 말하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생각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다름을 보려고 해야 자신의 사유 지평이 넓혀진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있다.

뒤샹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1917년에 나온 '샘'이다. 이 작품은 남성용 변기로 여성의 성기(자궁)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왜 '샘(Fontaine)'인가? 그건 아마도 쿠르베가 그린 잉태의 샘을 상징하는 '세상의 기원'과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잘 생각해 보시길…) 뒤샹은 이 작품을 자신의 '레디 메이드' 버전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그런데 어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가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하였던 사실이었다. 프랑스어를 알면 그 작품전이 더 흥미롭다. 이 말을 풀면, Erose, c'est la vie.이다. 이말을 직역하면, '에로즈, 그게 삶이다'란 말이다. 또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가시 공유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어제 공유했던 것처럼, 세속주의는 프랑스 정부가 택하고 있는 정책 기조이다. 자유를 앞세운 세속 국가라고 했다. 유발 하라리는 세속주의를 말하면서 부제로 "당신의 그늘을 인정하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늘, 아니 그림자 없는 실체는 없다. 세속주의는 가끔 종교의 부정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일관된 가치 기준으로 규정되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세계관이다. 세속주의자들은 세속적 가치들에 대해 독점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도덕과 지혜는 어느 특정 장소와 시간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간의 자연적 유산이라고 본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세속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6 가지 가치, 즉 진실과 연민, 평등과 자유 그리고 용기와 책임 중에 첫 번째 가치인 진실 대해 생각해 본다. 진실은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을 말한다. 중요한 것이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으려는 이상이다. 진실과 믿음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구별하지 않는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 진실로 통한다. 이런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아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가? 가짜가 아닌가?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때, 우리는 오히려 더 강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반면 세속주의자들은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신성시 한다. 이처럼 진실에 헌신하는 태도야 말로 근대 과학의 기저를 이룬다.

믿음, 물론 살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선 중요한 것은 신앙과 믿음은 다르다. 신앙이란 의미의 영어 '페이스(faith)'는 원래 '신뢰'라는 뜻이다. 신앙이란 어떤 사람이나 이상적인 삶에 대한 신뢰이자 충성이다. 또한 지적이며 정신적인 활동이나 고백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내재된 일종의 덕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약속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그것을 지조 있게 지키는 행위가 바로 신앙이다. 인간의 삶에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다면, 그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바로 신앙이다. 라틴어로 '크레도(credo)'는 흔히 '나는 믿는다'로 번역되는데, 그 의미를 직역하면 '우주의 질서에 맞게 자신의 심장(생각과 정성)을 배치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영어로 '빌리프(belief)'가 된다. 배철현 선생한테 배운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라는 말은 단순히 '지적으로 그의 존재를 믿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온전하고 완벽한 종교 생활을 지향하고 그 종교의 신화와 의례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이 길어지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진실과 믿음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카르트가 말하는 '방법적 회의", 즉 자신의 생각 의심하면서, 우리는 진리에 다가가려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어떤 것을 믿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속주의의 또 다른 가치인 자유를 위해서이다. 자유는 일체의 모든 권위로부터 저항하고 비판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믿음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아는 목사님에게서 온다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 밖에는 담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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