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마음 둘 곳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사람 만나는 일이 어려워지다 보니, 더더욱 마음 둘 장소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동시에 타인을 맞아들일 여백도 줄어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안개처럼 피어 올라 확고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다른 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던 결속감이 느슨해 지면서,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다는 적막함이 스멀스멀 깃든다. 그래 이 허전함과 적막함을 떨쳐보려 이것저것 손을 대보지만 영혼의 움푹 팬 자리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럴수록 숙성되지 않은 욕망은 더 집요하게 우리 옷자락을 잡아 끈다는 점이다. 악순환이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어서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가장 좋은 위로는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 못지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나의 어려운 처지처럼 느껴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지만, 마음의 얼룩은 걷어내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연민으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심(治心), 즉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시는 김종삼 시인의 것을 택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자신의마음을 둘 곳을 만들어 놓기로 했다. 아침에 친구의 담벼락에서 이 시를 만나, 다시 읽으면서 다짐한다.
장편2/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2017년 11월 27일 이진성 헌법재판관이 취임식에서 낭송해 화제가 된 시이다. 장편이란 200자 원고지 15매 정도의 짧은 분량에 따른 소설의 갈래 이름이다. 장자가 손바닥 장(掌)자 이다. 우리가 흔히 꽁트 혹은 엽편(葉篇)이라 부르는 것이다. 손바닥 만큼 짧은 문학작품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품(小品), 혹은 작은 풍경이다. 이 시는 짧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이 시가 말하는 것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따지지 않고,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판결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고 했다. 헌법에 입각하여 모든 사건은 판단되어야 한다. 보수라서 혹은 진보라서 그에 치우친 판결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행여 혈연, 지연, 학연 혹은 그 외의 친소 관계로 섣불리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인과 이 재판관이 꿈꾸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법 앞에 차별 받지 않는 사회였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몇 가지 그림이 그려진다.
• 밥집이 조선총독부보다 더 위세가 느껴진다.
• 소녀는 태연하였다. 영감의 인색한 태도와 소녀의 태연하고 당당한 태도가 대비된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서의 도리를 다하고 사는 소녀의 고귀한 품격을 보여주고 싶은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엿보여 훈훈하다.
• 소녀의 손에 주목해 본다. 구걸할 때 그녀는 손을 오므리고 있었을 거다. 그녀가 이번에는 손을 편다. 친구는 담벼락에서 "오므린 것들은 다 착하다"는 문장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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