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매주 월요일은 이야기를 하는 날로 정했다. 우리는 이야기 하려고 사는 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자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누구에게나,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이 삶의 엄연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거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그래 우리는 서사의 힘을 길러야 한다.
최진석 교수는 "논증이나 논변에 빠지는 사람보다 이야기 하는 사람의 영혼이 한 뼘 더 높다. (…) 치밀하게 짜진 논변의 숲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잃는다"고 말했다. 논문 같은 논증적인 글에서는 영혼이 건조하고, 자신을 잃는다는 말이다. 오늘은 공자가 말했던 '바뀌는 사람'과 '안 바뀌는 사람'을 구분하는 이야기를 공유한다. 페북의 담벼락에 올라온 "30year.tistory.com"의 글을 읽고 갈무리 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전국 유량을 하던 시절, 어느 날, 길 한 가운데서 똥을 누는 자를 맞닥뜨렸다. 공자는 조용히 그 자를 피해 길을 재촉했다. 몇 일 후, 또 길을 가다가 길가 풀숲에서 똥을 누는 자를 만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눈물이 쑥 빠지게 인의와 예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제자들이 이러한 공자의 행동이 이상해서 물었다. "아니, 왜 몇일 전 그 사람은 모른 척하시고, 저 사람은 왜 그렇게 혼내십니까? 그러자 공자는 "품숲에서 누는 자는 그나마 부끄러워 하는 양심이 있어 말이 통할 사람이다. 그런데 한가운데서 누는 자는 근본이 글러먹어 어설피 말했다 가는 칼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리라"고 말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원래 태어날 때 사람은 생각이 없다. 살아가면서 사회 체제나 구조 등에 의해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생각이 진짜 내가 한 생각인가, 그 생각이 진리에 가까운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하다'는 내 생각을 '의심하다' 아니 '회의하다'로 읽어야 한다. 고집스럽게 갖고 있는 내 생각을 부정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예컨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생각의 경우 정답이 없다. 다만 이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있고, 우리는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진다. 왜냐하면 풍요로운 사유와 정교한 논거를 갖춘 내 생각을 가져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내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건강한 사회는 창피함, 아니 부끄러움(恥)을 아는 사회이다. 보통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 한 번 만나고 헤어질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에는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교통 법규 위반에 적발된 자신만 재수 없다고 여기는 경우처럼,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 중의 하나이다. 모두 다 법을 지키지 않는데, 적발된 자신만 재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경우이도 마찬가지이다. 부정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 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느낀다면, 자신의 인간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모든 인간관계가 일회성인가?
오늘 아침은 창피함을 아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성찰해 본다. 그래 우리는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 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답에만 빠지지 말고, 질문하는 사람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신록의 계절, 계절의 왕인 5월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늘 아침 이팝나무의 꽃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안부/윤진화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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