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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얼굴 반찬/공광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월 첫번째 일요일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보면, 낙타를 데리고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 잘 가다가, 멀리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면 그 때부터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지 신기루이고 아직도 몇 십 킬로를 더 가야 하는 데 말이다. 나도 서울에서 대전을 차를 갖고 내려오다 보면, 가장 힘든 때가 대전에 거의 다 와서 이다. 보통 사고가 많이 나는 것도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이다. 긴장이 풀어진 까닭일까?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이번 연휴만 잘 넘기면 된다고 한다. 거의 막바지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적지 근처에 오니 더 힘들고, 갈증이 난다.

그래도 농장의 잡초는 때를 노리고 쑥쑥 큰다. 어제는 뜨거운 땡 빛 아래에서 풀을 뽑았다. 작년에 풀과의 전쟁에서 진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초반에 풀을 제압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한 달 전에 모종으로 심은 상추들은 제법 컸다. 잔뜩 수확을 해, 어제 토요일은 점심과 저녁으로 상추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속이 편치 않다. 아침 사진은 농장 가는 길에 세상과 무관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늠름한 나무를 만난 것이다. 아침 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얼굴 반찬/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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