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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제프 베조스가 제시하는 '아마존 보고 양식'의 글쓰기

191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28일)

 

처음 제프 베조스가 PPT를 없애고 6페이지 내러티브 메모를 쓰기로 결정했을 때, 제프 베조스와 아마존 임원들은 이 메모를 만드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훌륭한 메모를 만드는 데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훌륭한 메모는 작업을 개선하고 싶은 동료들의 의견을 반영해 함께 쓰고 다시 쓴 다음에, 며칠 뒤에 리프레시된 마음으로 다시 편집해야 한다". 그리고 아마존은 이렇게 잘 정리된 메모를 토대로 회의를 하면 회의의 질로 올라간다는 것을 깨달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글쓰기가 가지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성 때문으로 보았다.

1) 글쓰기는 생각을 명확하게 해준다. 말은 불분명해도 어찌어찌 끌어갈 수 있지만, 글은 알고 있는 것이 불분명하면 제대로 쓸 수 없다. 즉, 생각을 글로 정리해야 사고가 명확해지고, 사고가 명확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거다.
2) 글쓰기는 이해력, 기억력, 응용력을 증대 시켜 준다. 
3) 글쓰기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향상시켜 준다. 특히 초고를 쓰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계속 개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훨씬 명확하고 깔끔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마존이 6페이지짜리 메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자신 뿐 아니라,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과거의 명성에 집착하면 혁신할 수 없다. 과거의 이름은 이미 말해진 이름이므로 노자가 말하는 도(道)가 아니다. 거기에는 혁신이 없다. 미래가 없다. 아마존을 설립한 제프 베조스는 맨해튼에서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였지만 인터넷의 미래를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과감하게 죽였다. 그리고 맨해튼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갔다. 그곳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과거를 죽인다. 잘나가는 책을 죽이고, 잘 나가는 온라인을 죽이면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제프 베조스가 제시하는 '아마존 보고 양식'의 글쓰기는 본받을 만한 하다고 본다.
1) 배경과 질문을 먼저 한다.
2)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접근 방식 (누가, 어떻게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를 설명한다.
3) 접근 방식 간의 비교를 한다.
4) 앞으로 취할 행동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고객과 회사에 혁신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양식은 자신을 성찰하는 인문학 글쓰기에도 적용되어야 할 내용이다. 기승전결이라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더 구체적인 것 같다. 아마존은 'NO 파워 포인트 문화'라 한다. 모든 아이디어는 6장의 언론 보도용 기사 스타일의 글로 작성되고 보고된다고 한다. 모든 회의도 발표자가 작성한 글로 시작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미나들도 사전에 원고가 배포되고, 그 원고를 읽고 온 후, 세미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는 내용을 PPT를 화려하게 만들어 시간을 때우는 듯한 인상을 받은 세미나들이 많다.

아마존은 회의 처음 15-30분 동안 참석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성된 글의 내용을 우선 숙지한다고 한다. 그래야 이후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받을 만한 하다. 제프 베조스에 의하면, 글을 쓰는 방법이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더 깊은 고민을 하게 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PPT 프레젠테이션은 발표자 중심이고, 글은 청중 중심이라는 것이다. PPT 발표는 발표자의 화술에 따라 강조할 부분만 강조하고 은근슬쩍 다른 부분은 감출 수 있다지만, 온전한 문장으로 쓰여진 글에는 도저히 숨을 곳을 찾을 수 없고, 독자 위주로 작성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부터 나는 해파랑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산부터 출발하여 동해안을 이어 걸을 생각이다. 어제는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며 광안리 해수욕장, 수영만을 돌아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3만 2천보를 걸었다. 몸은 피곤하고, 특히 다리가 아팠지만, 마음은 충만하고 뿌듯했다. 그렇게 2월을 잘 보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2월은 간다/홍수희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글쓰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교과서적인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공유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강의하는 글쓰기 실전 강의를 책과 유튜브로 듣고 정리한 후, 공유한다.

고미숙은 글쓰기의 시작은 발원(發願)과 집중(執中)이라 했다. 글을 쓰려면 내공(內攻)이 필요하다. 내공은 욕망과 능력의 함수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욕망이라면, 그것을 지속하는 힘이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내공은 중국 권법의 용어로 '내가(內家)의 공부(功夫)'를 줄인 말이다. 이는 곧 내적으로 쌓은 힘을 뜻한다. 사실 산다는 것은 온갖 고난을 겪는 거다. 피할 수 없을 바에 야 부딪혀서 겪어 버리는 게 낫다. 그래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누구든 자율성과 능동성을 발휘하는 길을 반드시 확보해야 된다. 그래야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 길 중에 글쓰기가 가장 보편적이다. 

글쓰기에서 발원은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주제가 압축되며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집중하는 거다. 집중하면, 일상과 세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요약하면 간절히 발원하기는 주제를 화두처럼 늘 갖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항심을 갖고 집중하며 삶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 거다.

그런 다음 글 쓸 내용들의 질서를 부여하는 거다. 산만하게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에 리듬을 부여하는 거다. 질서를 줄 때 그 기준을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 존재가 이 리듬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학교 다닐 적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 불렀다. 봄은 기(起)이다. 일어나는 기운이다. 글의 처음에는 스프링(용수철)같은 봄의 기운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승(承)은 기에서 제기한 문제를 펼치고, 가을의 결실처럼, 전(轉)은 말 그대로 전환이 일어나야 하고, 결(結)은 전제 논지를 압축하면서 응축해야 한다 겨울이 되면 만물이 씨앗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게 리듬을 타는 거다.

봄-여름-가을-겨울,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대단원 등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가 된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로 리듬을 타야 한다. 세상 만사가 시작, 중간, 변화, 마무리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리듬을 타면 엔트로피 법칙(사물들은 늘 무질서를 향해 달려간다)에 저항해서 방심하지 않고 정신 차릴 수 있다. 좀 더 디테일 하게 다시 이야기 해본다. 
- 기(起)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어내는 봄의 기운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유함이다. 봄의 풀꽃들도 자세히 보면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여 똑같은 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고유한 씨앗을 발아시키려면, 언 땅을 뚫고 나와 건너가야 한다. 평소에 우리는 통념과 상식이라는 언 땅에서 산다. 그 통념과 상식은 견고하고 고집스럽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 받는 말을 보면 안다. 거기서는 나의 고유한 생명력을 일으킬 수 없다. 상식과 통념이라는 굳어 경직된 땅에서  봄의 기운처럼 건너가야 한다. 건너간다는 말은 아주 빈곤하고 척박한 그 땅을 뚫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건너간 곳에서 언어가 창조된다. 풀꽃 하나가 보여주는 생명력처럼, 문제제기 하나면 충분하다. 어쨌든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주말 농장 일도 그렇다. 땅을 얼려야 한다. 그리고 그걸 갈아 엎으면, 그 때부터 땅은 봄 기운을 받는다.

- 기에서 새싹이 발아하고 나면, 꽃샘 추위가 와서 다시 얼게 한다. 우리들의 청년기와 같다. 그래 모든 문화에서 '가혹한' 통과의례가 있는 것이다. 여름처럼 승(昇)에서 활짝 펼치려면, 꽃샘추위의 통과 의례처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냥 대충 보고 대충해서는 글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런 농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벌레가 '대충'이라 한다. 대충하면, 씨앗이 웅크린 채 말라 비틀어진다. 대충한다는 것은 땅을 뚫고 나와서 꽃샘추위와 맞짱을 뜨지 않는 거다. 그걸 인정한다면, 늦더라도 문제를 클로즈업 해서 미세한 디테일을 포착해야 한다.

- 전(轉)에 가면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다름 말로 하면 반전 혹은 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의 흐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통념과 상식을 깨면서 치고 나가야 한다. 여름의 절정에서 가을로 교체되는 시기이다. 이걸 우주의 대혁명,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 한다.

금화교역이라는 말이 어렵지만 흥미롭다. 음양오행설에서 목화는 양이고, 금수는 음이다. 목생화는 양에서 양으로 가고, 금생수는 음에서 음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오행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목생화는 양으로 성장을 금생수는 음으로 내실을 관장한다. 목화가 금수를 만나지 못하면 성장은 하나 허장성쇠(墟張聲勢)가 되고, 열매를 맺지 않으니 평생 배워 활용하지 못하고, 금수가 목화를 만나지 않으면 성장해 본 적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것만 지키고 사니 이 또한 발전이 없게 된다. 음양이 만나야 배운 것을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재기에 도전할 수 있는 지혜 또한 쌓이게 되는 것이다. 목화가 금수를 보지 못하면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니 했던 실수를 반복하게 되니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것이고, 금수가 목화를 보지 못하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질 못했으니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따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음과 양이 만나야 쓰임새가 생겨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니 양 중의 양인 화와 음 중의 음인 금이 만나 서로의 경험과 능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금화교역이라 한다.

이렇게 자연은 해마다 역(易)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야 우주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야 결(結), 즉 겨울의 씨앗이 가능하다. 결은 지혜이다. 이 지혜가 쌓이면 열린다. 그래 결은 열려 있어야 한다. 명료한 답이 있을 수 없다. 지혜는 경계에 서는 일이다. 그래 결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열림 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결론에 와서, 제기된 문제가 훨씬 심화된 혹은 아주 새로운 문제로 구성되어야 한다. 겨울에는 씨앗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씨앗이 되면 유형적인 것이 없어진다. 빈 허공이 남는 거다. 여기서 빈 허공은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는 현상일 뿐이다. 그래야 또 다시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봄-여름-가을-겨울을 글쓰기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병들지 않고 정신차리고 살려면, 몸과 마음을 훈련하는 것 말고 다른 약은 없다. 그 훈련의 핵심이 앞에서 말한 리듬을 타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의 차서(次序)를 잡아서 그 리듬에 맞춰 해 나가는 것이다.  리듬을 타지 못하면 모든 게 일그러진다. 관계도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아 병을 얻는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항복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거기에 저항하는 최고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