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27일)

"그는 세상에 대한 훌륭한 카피라이터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을 한마디로 딱 찍어서 알려주고 시각을 열어줬던 분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유홍준 선생의 추모이다. 여기서 '그는'은 이어령 선생이다. 그분이 어제(2022년 2월 26일) 돌아가셨다. 그는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단어를 고르시었다. 그는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즉 소멸을 향해 가는 자가 아니라, 탄생을 향해 가는 자라는 거다.
시대의 지성, 그를 가장 최근에 글로 만난 것은, 2022년 1월 1일자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컵 하나를 가지고 보디(몸, 육체)와 마인드(마음) 그리고 스피릿(영혼)을 설명했다. 이해가 질 되었다. 컵이 육체이다, 죽음은 이 컵이 깨지는 거다. 유리 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이 내 몸이 깨지는 거다.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진다.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다. 그 게 스피릿, 영성이다. 원래 컵은 비어 있다. 거기에 뜨거운 물, 차가운 물 담기는 거다.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이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게 스피릿, 영성이다.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컵(육체)가 깨지고, 그 안에 담긴 물(욕망 감정 등의 마인드)이 쏟아져도 컵이 생길 때 만들어진 원래의 빈 공간(영혼)은 우주에 닿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나 자주 '마인드를 비우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빈 찻잔 같은 몸으로 매일 새 빛을 받아 마시며 살라고, 비어 있는 중심인 배꼽(타인과의 연결 호스)과 카오스의 형상인 귀의 신비를 잊지 말라'고 우리들 다독였다.
그는 암이신 데, 항암 치료를 받지 않으시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며, 투병이라는 말보다 '친병'이 좋다고 하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동양은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본다. 상호성이 있다는 거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싶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 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거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 "내일이 없어, 오늘이 전부야"라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농밀한 순간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것인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암이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그의 삶을 그리는 바탕은 인법지(人法地)라 했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산다. 그 다음은 천법도(天法道)이다. 하늘은 도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 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ego eimi)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하면, '아이 엠(I am)이다. 프랑스어는 '즈 수이(Je suis)'이다.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그걸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격신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 존재이다. 너도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다 신이다. 나는 지난 달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잘 읽었는데, 그리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삼가 고인 명복을 빈다.
전쟁, 이전투구(泥田鬪狗)같은 대통령 선거, 오미크론 바이러스 등 시국이 시끄러운데, 시간은 무심하게 흐른다. 벌써 2월 마지막 주일이다. 오늘부터 나는 해파랑 길을 걷기로 했다, 그래 일찍 KTX로 부산에 간다. 부산 바다 바람에 모든 시름을 날리고 올 생각이다. 나훈아의 노래 <공(공)>을 소환한다. 그러니 사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작은 선물 하나도 받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인데,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의 어떤 선물도 이보다 좋을 리 없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멋진 일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당장 자랑하고 즐기고 누리듯이 우리가 받은 삶이라는 선물도 늘 감사하며 즐기고 누려야 합니다. 이 선물꾸러미 안의 모든 것 하루하루, 한 사람 한 사람, 재능과 환경, 웃음과 사랑, 실수와 이해 어느 하나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삶이란 순간순간이 위대한 선물입니다." 정용철시인의 <<사랑의 인사>>에 나오는 말이다.
공(空)/나훈아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 없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 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 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 였다는 것을
모두 꿈이 였다는 것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그에 대한 세상의 기억들을 좀 더 공유해 본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고 했다. 사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고민이지만, 나는 공자가 말하는 '인생 삼락(三樂)'을 지키며 갈 생각이다. 그 길을 공자는『논어』의 첫 페이지에 말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군자 3락(君子三樂, 즐거움)'이라고 한다.
1)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즐겁다. 여기서 학습은 단순히 나의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바꾸고,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나의 매력을 키우는 것이다.
2)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여기서 벗은 '벗 우'가 아니라 '벗 붕'자이다. '벗 우'는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고, '붕'은 꿈과 뜻이 같은 친구들이다. 그런 '벗 붕'들과 함께 지내며 사는 것은 인생 두 번째 즐거움이다. 이건 전율이다.
3)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이 말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연연하지 않고 내 일상을 유지하며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군자의 모습이다. 끝으로 이건 신비이다.
종합하면, 군자란 학습하는 인간, 같은 꿈을 꾸는 동지와 함께 사는 인간 그리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길 유지하며 사는 인간이다.
과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있고, 과거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있다. 전자는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가 초라해 불행하고, 후자는 과거의 형편에 비해 현재가 편안해 행복해한다. 삶이 결코 공정하거나 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편에서 생각과 해석은 달리할 수 있다. 과거의 큰 불행도 내 입에서 가볍게 나오면 듣는 사람도 그리 받아들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은 지나갔으므로 이제 내 탓인 시간이 남은 것이다. 어디에 선가 날아온 화살에 팔을 맞았는데, 화살이 날아온 곳과 이유 등을 분석하느라 화살을 뽑지 못한 채 산다면 어찌 되겠는가. 중요한 건 화살부터 뽑아내는 것이다. 삶을 항해에 비유하면 인생에서 부는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내게!’가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평범한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상처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상처의 시간을 다독여 잘 보내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물러나라.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 2의 계율이다." (에리히 케스트너, <두 가지 계율>)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쓰신 이근후 교수님이 인용하신 글이다. 한 번만 살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 신영복 교수의 사유를 이근후 교수는 인용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다 하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문장 속에 답이 있다고 본다.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가운데 발견하는 사소한 기쁨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나이 들어감에 겪는 슬픔을 달래 준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뜻을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일을 다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말이 안되는 곳이 많았다.
안 늙으려면, 노화를 더디게 하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면 된다. 지루한 시간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즐겁지 않은 일은 안 하는 것이다.
1) 세상은 불공평해도 세월은 공평하다. 세상이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푸는 것이다. 못 푸는 게 아니라, 안 푸는 것이다. 풀지도 않으면서 저절로 풀리기를 바란 거다. 인생 수능의 채점자는 세월이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 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조건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세월이 주는 가능성과 한계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2) 세상과 세월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세상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세월이 이긴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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