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아침 글입니다.
한가한 연휴 3일째인 날, 중앙일보 양성희 논설위원의 <우리는 어떠한 부모인가>를 읽고, 부모이기 이전에, 우리는 '위대한 개인'이 되기 위해 왜 독립과 자유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교육과 입시 문제에 관해서는 선과 악의 문제보다 ‘현실과 욕망’이란 프레임 속에 갇혀있다.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스카이캐슬>에서 이수임보다 한서진을 더 좋아했다. 실제로 우리들에게 자녀 입시 문제는 극에서처럼 상위 1% 피라미드 꼭대기를 대물려주는 차원은 아니다. 그보다 자녀의 삶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이 크다. 입시 전선에 뛰어드는 부모들의 출사표도 비슷하다. “아이들 미래에 큰 욕심 없다. 그저 제 앞가림할 정도만 되면 좋겠다.” 물론 여기서 ‘제 앞가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나도 그렇게 말한다. 문제는 그 '앞가림'의 폭이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그게 문제이다.
난 그런 생각을 안 해보았는데, 이런 문화가 저출산 문제와 연결된다. 자녀의 출세나 성공보다 ‘안전’을 바라는 마음은 소박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위험한 측면도 있다. 자녀의 성장과 독립보다 ‘안전’을 바라기 때문에 늙어 죽을 때까지 자녀 안전 지킴이가 되고, 그런 전폭적 헌신만을 진짜 사랑으로 여기게 한다. 그렇게 키워진 자녀들이, 자기들은 그럴 자신도 없고, 감당도 안 된다며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택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자녀에게는 독립과 자유의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것과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키우는 것의 유일한 차이는 그 사랑의 대상을 독립시킬 것이냐 여부다. 반려동물이라면 영원히 보살펴야겠지만, 아이는 독립해서 걸어나가도록 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고 소설 ‘설이’를 펴낸 심윤경 작가의 말이다.
<스카이캐슬>에서 정준호가 70대 노모 정애리에게 뒤늦은 ‘이유(離乳, 젖떼기)’를 선언하는 장면이 화제였다. 부모 뜻대로, 부모가 대신 살아준 인생, 자신은 허깨비라는 절규와 함께다. 그러나 ‘이유’는 자식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좋게 말해 자식의 안전을 걱정하는 거지, 실제로는 여전히 자식을 내 소유물로 보고 자식에게 자신을 투사하며 부모 스스로 ‘이유기’를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물을 때다. 입시제도든 뭐든 부모가 바뀌지 않고서는 세상을 바꿔봐야 거기서 거기다. 세상 탓, 제도 탓 하지만 부모도 문제란 걸, 부모들도 잘 안다.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
나도 너무 늦게 부모로부터 '젖'을 끊었다. 실제 부모가 다 돌아가신 후에야 부모로부터의 독립의 중요성을 알았다. 나는 하나 뿐인 딸에게 '독립과 자유'의 힘을 물려 줄 것이다. 신화를 읽다 보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건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는 이야기이다. 영웅은 독립과 자유의 힘에서 나온다. 가능한 일찍 어머니의 젖을 떼야 내가 나로 살 수 있다.
스웨덴 이야기가 오늘 우리들의 문제의 대안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는 자유와 독립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스웨덴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자기 인생의 독립을 선언하는 거창한 행사를 벌인다. 그리고 그들은 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거나 해외 배낭 여행을 떠난다. 세상을 경험하고, 그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부부는 사랑으로 연대하며 평등을 실천한다. 연대라는 말이 흥미롭다. 부부는 사랑으로 연대하지만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는 지극히 평등하다. 가사를 제대로 분담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루도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 연대하지만 서로 의존하지 않는다. 난 이걸 '공동체 정신'이라고 본다. 이런 가치 속에서 남편이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혼을 많이 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이다. 부부생활은 평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이다. 그것이 깨졌다고 느끼는 순간 이혼을 결심한다. 다시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과거의 파트너에 대한 나쁜 감정에 사로잡혀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쌍방이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아이들 문제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왜 사회보장제도가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제도가 사람들의 물질적 기초를 만들어주니까 삶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 여유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회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적으로 연대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나름 행복하게, 그리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도 각자의 길을 간다. 나도 자식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갈 것이다. 스웨덴의 노인들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부모는 연금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 자식이 부모의 생활비나 용돈을 부담할 일은 없다. 사회가 모든 것을 책임져 주니, 부모가 병들어도, 자식들이 생업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식은 부모가 어찌 되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스웨덴이 선택한 것은 강력한 사회복지제도로 무장된 사회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해답이 아니다. 그건 더 불평등한 사회만 만든다. 복지로 평등한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복지라는 물질적 토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 무릇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사람 앞에서 자유와 독립을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코 실현될 리 없는 종이 위에 쓰여진 권리일 뿐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유와 독립에서 나온다.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며 살 때, 인간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자유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역량(독립적 존재)에서 나온다. 이 문제는 물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나 우선 개인적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이 노력하여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스웨덴은 한마디로 개개인이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독립사회이다. '위대한 개인'이란 그러니까 자유와 독립을 최고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독립적인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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