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씨팔!/배한봉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도 코로나-19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글이 길다. 크게 이어지는 주제가 세 개이다. 특히 세 번째 주제는 삶의 지혜이다. 지난 주부터 고미숙의 책을 리-라이팅하며, 내공을 쌓고 있다. 오늘 아침은 글쓰기 실전 편의 두 번째 글이다. 고미숙은 말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면 안 된다. 반드시 내 글을 읽고 솔직하게 논평을 해주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쓰기 자체가 누군가에게 말 걸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글쓰기는 그 자체로 네트워크, 즉 세상과 연결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인생과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만나고서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그걸 언어와 문자로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글이 제대로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글쓰기 실천 이야기는 골조, 즉 기본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라면, 지금부터는 골조에다가 육체를 입하는 거다. 피와 살을 입히는 거다. 그건 목차를 짜는 일이기도 하다. 이건 글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일상의 모든 것, 즉 들은 것, 읽은 것, 관찰한 것들을 다 활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잘 배열하고 적재적소에 쓰는가에 달려 있다. 배열의 원칙은 독창성과 논리성이다. 처음에는 유연하게 풍부하게, 마칠 때는 예리하고 단호하게 하는 것이다. 유연하다는 말은 뭐든지 다 섞일 수 있는 유동성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독창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완결성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해야 한다. '절차탁마'는 "학문, 도덕, 기예 등을 열심히 닦음"이란 뜻이다. 좀 더 풀면,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쓰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말이다. 자공과 공자가 <시경>에 대해 나눈 내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君子)는 뼈나 상아를 잘라서 줄로 간 것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서 모래로 닦은 것처럼 빛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하면, '끊고, 갈고, 쪼고, 갈다'이다.

이런 절차탁마를 하는 동안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자의식(自意識)이다. 자의식은 자기에 대한 의식인데,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인정욕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의식은 상처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자의식으로 질투가 발생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기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샘하며 미워하는 마음이다. 비슷한 말로 '시새움'이 있다.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다. 줄여서 '시샘'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시기는 질투와 이기적인 야망과 결합하기 때문에, 다른 악덕을 끌어들여 죄악을 더욱 악하게 만든다. 이웃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고, 누군가의 성공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퍼킨스는 이를 ‘영혼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즉 자신의 소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소명을 탐하는 것이다. 어쨌든 자의식의 포인트는 자기 자신하고 만 전투를 해야 한다. 그걸 통과해야, '절차탁마'하며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절차탁마'는 문장들을 조금씩 변형시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갈고 쪼고 다듬고 문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에 대한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아침 글을 마치고 나 자신에게 박수를 치곤한다. 내가 만족하는 것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글은 나의 생각, 나의 단어 등 나의 정신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내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고 보다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안 받고는 부차적인 일이다. 이런 자의식을 비워야 글쓰기가 쉬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리 다듬고, 저리 다듬고, 이 접속사를 쓸까 말까, 종결어미를 어떻게 다양하게 쓸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문장 실력이 늘고 어휘도 풍부해 진다.

실컷 읽고, 허리가 아파 혼자 걸었던 길이다. 내용이 지성을 요구하는 진지 모드이라,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좀 재미난 시를 공유한다. 어제 ZOOM으로 하는 회의에서 혼자 "씨팔"했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급적 침묵하리라. 말은 말을 다 하지 않아야 맛이 날 때도 있다.

씨팔!/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 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 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책은 글이고, 글은 결국 말로 이어진다. 글과 말이라는 이 언어가 신비롭다. 이 언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떤 사람이 쓰는 언어, 글이나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특히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언어도 신체가 아니가 의심한다.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별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매우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결벽증으로 소쉬르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언어학 강의』는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쓴 노트들을 가지고 제자들이 엮은 책이라 한다.

누가 "인간 답게 살고 싶다", "인간으로 살고 싶다" 한 말이 둘 다 비슷한 말이지만, 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느냐 에 따라서 그 문장이 주는 의미는 같지 않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와 빠롤로 나누었나 보다. 소쉬르는 인간의 언어 활동에는 개인차에 상관 없이 누구나 똑같이 지니고 있는 추상적이며 잠재적인 부분의 활동과 개인이나 발음 또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부분의 활동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즉 랑그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하게 지니고 있는 언어라면, 빠롤은 그 랑그의 실현 물인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해, 랑그는 추상적인 언어체계라면, 빠롤은 구체적인 개인의 입으로 통해 발화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 우리는 학교에서 언어를 배우는데, 책을 읽고 언어를 배우고, 그 다음에 글을 쓴다. 이 것을 우리는 지성 혹은 로고스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의 힘으로 우리는 언어의 길을 통제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이 때 나오는 것이 담론이다. 담론은 언어의 구조이자 배열이다. 개념을 창조함과 동시에 기존의 개념의 배치를 바꾼다. 이 담론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힘이고 권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새로운 담론이 구성되지 않으면, 절대 혁신은 불가능하다. 최근에 박태웅이라는 IT칼럼니스트를 알게 되어 다음과 같은 새로운 담론을 고민 중이다.
-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定義)'를 내린다는 것이다.
- 데이터 기반 사회가 되려면, 숫자가 말하게 하여야 한다.
-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를 목표로 바꿔야 한다.
- 협상할 줄 아는 사회를 위해 딜(deal)을 가르쳐야 한다.
- 시속 150Km 이상 던지는 투수가 사라진 사회에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 청소년들이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 교육과 정책 운영이 정확한 근거(evidence)를 가지고 이뤄지기를 바란다.
- 인공지능에 맞는 새로운 교육문법이 필요하다.

몇 일동안 위의 담론들을 다룰 생각이다. 새로운 담론으로 우선 정의를 내리고 혁신을 꾀해야 한다. 개인의 삶에도 필요한 내용이다. 물질적 증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벌고 재능을 많이 익히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담론이 창조가 안 되면 자기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될 수 없다. 내 인생의 의미를 내가 부여해야 한다. 이미 세팅된 무대에서 열심히 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냥 열심히 일하면, 돈은 번다. 그러나 그 돈은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지만, 거기서는 새로운 담론이 안 나온다. 돈만 벌고, 무의미하게 살다 보면, 어는 순간 번-아웃(방전)된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배한봉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