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5.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19년 작년은 나의 환갑이었다. 그러니 올해는 인생의 후반부의 시작이다. 혈연과 지연이 내 인생의 전반부를 작곡하였다면, 내 인생의 후반부는 내가 혼자 작곡을 할 테다. 나는 인생 후반부를 환경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과감하게 결정할 생각이다. 이런 시작은 아침 글쓰기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건 나를 본격적으로 글쓰기와 생각 훈련에 몰입하라는 섭리(攝理,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으로 프랑스어는 la Providence이다)였다. 나와 같은 이런 변화를 꾸준하게 보여주는 선생을 한 분 안다.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냥 내 페이스북 친구일 뿐이다. 아니, 그가 학교에 있을 당시, 그가 출판한 책들을 읽었고, 그분의 강의를 유튜브로 들었다. 배철현이다.
그가 어제 그의 글에서 알려준 세네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오늘 아침 다시 읽어본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 환경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시칠리아의 외로운 섬에 유배되어 분노에 가득 찼을 그가 그 분노를 이기면서, 자신의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바꾸는 태도와 생각을 나는 존경하게 되었다. 어제 나는, 명절 연휴를 보내면서, 외로웠지만 오히려 그 상황이 나의 영혼을 증진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세네카의 편지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배철현의 다른 묵상 글에서,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을 셋으로 구분"했다는 글에 나는 눈을 고정시켰다. 1843년『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 미적인 인간: 미적인 인간의 목표는 탐미를 통한 자기-쾌락이다. 자신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인 쾌락과 만족 그리고 그 만족 속에서 안주하고 싶은 탐닉이 인생의 목표이다. 그래 탐닉 시켜줄 새로운 대상을 찾으러 끝없이 배회하는 철새이다. 미적인 인간은 자신을 고상하게 만들어 삶을 승격시켜 준다고 설교하는 철학자의 말 밑에 앉아 감탄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보고 감상하거나 구입하여 자신이 그 예술가가 된 것처럼 착각한다. 혹은 예술가, 철학자, 문필가들이 태어난 그들의 고향까지 찾아가, 그들의 삶을 감탄한다. 탐미적인 인간은 미(美)를 추구하지만, 정작 자신을 미로 만들지 못한다. 체화 되지 않은 지식은 표리부동하고 얄팍하다.
▪ 윤리적 인간: 윤리적인 인간은 인생의 행복을 자신이 아닌 타인과의 공동체적 삶으로 자기-탈출을 시도한다.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행복한 만큼, 자신에게 가까운 가족 그리고 친구, 더 나아가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주민의 안녕을 인생의 중요한 임무로 여긴다. 윤리적인 인간이나 도덕적인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에서 탈출하려는 무아(無我)를 연습하기 위해, 자신에게 쌓여 있는 이기심이란 적폐 제거를 삶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자기-중심에서 탈출하여 우리-중심, 더 나아가 타인/생명 중심으로 삶의 전환은 일시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이, 그 자신의 본성과는 떨어질 수 없는 거룩한 습관이 될 때 가능하다. 윤리적 인간은 언제나 구별되고 그 자체로 향기와 빛을 내는 인간이다. 그러나 미적인 인간이나 윤리적 인간은 너무도 인간적인 몸부림이다. 그런 인간을 극복할 수 있는 다음 단계의 삶은 종교적 삶이다.
▪ 종교적 인간: 종교적 인간은 미적 인간이나 윤리적 인간에 대한 극복이며 초월이다. 여기서 종교라는 말은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이끌어주는 통로로서의 체계이다. 종교적 인간은 자기-초월을 추구하며,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는 인간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나비가 자신이 고치에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새가 자신이 알에서 지내던 시간에 대한 추억이 없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자신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준, 어머니 뱃속 10개월을 모른다. 나는 전적으로 내 힘으로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힘으로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탐미적이며 정신적인 쾌락과 보람으로부터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 포기가 희생(犧牲)이다. 이 희생은 자신하고는 상관 없지만, 자신의 생명을 헌신할 정도로 거룩한 가치를, 자신의 삶을 통해 창조하려는 용기이다. 이 용기가 종교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순교(殉敎)이다. 희생을 프랑스어로 sacrifice라한다. 접두어 sacre가 거룩을 의미한다. 순간을 사는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개인이 된다.
종교적 인간이 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거룩한 가치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 잡은 책이 단테의 『신곡』이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어두운 숲에 처해있네." 총 3권으로 구성된 민음사 책으로 지옥편 34곡,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이다. 그러니까 총 100개의 노래이다. 좋은 것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면서 쉬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문장에서 단테는『신곡』의 중심 모티브를 하느님께 향하는 인간의 순례 이야기로 설정했다. 바로 그 설정은 앞에서 말했던 종교적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나는 보았다. "인생길 반 고비"란 단테에게 세른 다섯 살 되던 1300년이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올해가 환갑을 지난 첫해이다. 그래 나의 "인생길 반 고비"는 올해이다. 그냥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가 있는 "숲", 정확히 말하면, "어두운 숲"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드는 "숲"이 되는 원년이고 싶다.
겨울 숲/복효근
새들도 떠나고
그대가 한 그루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 있을 때
나도 헐벗은 한 그루 나무로 그대 곁에 서겠다.
아무도 이 눈보라 멈출 수 없어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지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보라를 그대와 나누어 맞는 일뿐
그러나 그것마저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보라 그대로 하여
그대 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를 내가 견딘다.
그리하여 언 땅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쥐고 체온을 나누며
끝끝내 하늘을 우러러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보라 어느샌가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를
사람들은 숲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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