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운동가가 하는 일은 사유하고, 생각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그건 기존의 문법을 넘어 새로운 문법을 만들려는 도전과 모험이고, 정해진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일이고,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궁금해 하는 추상과 상상이다. 이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다. 그래 인문운동가는 반역자이다. 반역자는 정해져 굳은 것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그것과 결별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꿈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꿈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가능해 보이면 꿈이 아니라, 그냥 괜찮은 계획일 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자가 '명(明)'자이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해와 달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대립된 두 존재가 개념적으로 하나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을 우리는 '안다'고 한다. 한문으로 이를 우리는 '지(知)'라고 한다. 그런데 '명'자는 구분된 '지'를 뛰어넘어 두 개의 대립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하는 일이다. 이것은 경계에 머무르거나 서있는 일이다.
이걸 신영복 교수님의 표현으로 하면, 지남철(나침반)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떨림이 없이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나침반이 아니다. 한 쪽에 빠지는 일은 지적 단순함이다. 그래서 인문운동가는 답이 없더라도 질문을 한다. 인문학은 내용의 습득이 아니라, 관찰하고 질문하는 살아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모든 질문에 답이 있진 않다/문정영
무언가를 물어도 엉뚱해 지는 계절,
길의 바깥쪽에서 사람과 길은 서로에게 깊어진다
내 눈가로 잠자리 떼가 지나는 오후 5시, 의문이 떠 있다
묻고 답하는 것이 한때의 유머처럼 장난스러운 적이 있다
어떤 질문에 엉뚱한 답은 이별 후에 발견된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어떤 증세가 들어서고, 흐린 답변뿐이다.
이제 명징하게 답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는 아닐까
쓸모 있는 것이 쓸모 없는 것과 차이가 없을 때
물음의 지붕이 곡진해진다
높은 곳에서 보면 지금의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불가설*이다
*불가설: 참된 이치는 체득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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