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12지가 처음 시작되는 쥐의 해, 경자(庚子)년의 첫날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그래 월요일까지 대체공휴일로 연휴이다. 그래 아침 글쓰기를 마치면, <박달재>를 다녀오려고 한다. "변방은 창조 공간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신영복 교수님의 글을 만나고, 쉬는 날 차분하게 변방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첫 행선지가 <박달재>이다.
변방(邊方)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그래 변방은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로 인식된다. 낙후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둔다고 해도 온정주의적(溫情主義的)이다. 마치 사회적약자와 마이너리티에 대해 보이는 관심처럼 말이다. 그러나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 해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가능성의 전위(前衛)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말하고 싶은 것은 변방을 공간 개념이 아니라, 변방성(邊方性), 즉 중심부의 주류 담론이 아니라, 비판 담론, 대안 담론을 찾아 보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심부의 주류 담론인 속도와 효율성이 아니라, 바깥에서 뒤돌아 보자는 것이다. 변방을 찾아가려는 이유이다.
주변과 변방이 더 개혁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심부로 들어간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키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중앙은 퇴행하게 마련이며, 변방에 있던 세력이 다시 중심부를 장악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나도 주변인이라 그런지 그 말이 좋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 창조,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면, 변방에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중심으로 가려고 변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래 변방에 있다면 오히려 기회이다. 그러나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주변인으로 나선다면 더 멋지다.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들은 자기를 변방에 두라는 이야기이다. 자기가 중심이라는 오만에 대한 경계이다.
-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듯한 '외모'
- 자기 생각의 절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 남과 힘을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치는 '말 솜씨'
생의 모든 아름다움과 의미는 '디테일(detail)'에 숨어 있다. 그런 디테일을 보려면 여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눈 안에 들어온 사물과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된다.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사진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은 박달재를 가 볼 생각이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사람들은 박달재 밑을 관통한다. 박달재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 외에는 발길이 끊어진 고개이다. 우리 동네도 그런 고개가 있다. 대전과 공주를 이어주던 '마티 고개' 이다. 이런 곳들은 오늘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변방 특유의 관점이 있다. 고개 밑은 어두운 터널을 직선으로 통과하여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묻게 한다.
그곳을 다녀온 후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새해"를 맞이할 생각이다. 새로운 해가 아니라, 새롭게 하는 해를 맞이할 생각이다.
새해 아침/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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