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진중권 이야기를 오늘 또 한다.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가 좋아했던 중앙일보의 백성호 기자의 칼럼이 눈에 거슬린다. 그의 칼럼 제목은 "진중권이 말하는 삶의 위너"이다. 제목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삶의 위너'가 무슨 말인가?
시작부터 그는 '논객 진중권'이 풀어내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찌르기'에 이목이 집중된다고 하며, 그의 주가가 뛰었다고 말한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문제의' 동양대학교에서 '찍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사표 쓰고 나와서는 칼처럼 자신의 혀로 사람들을 마구 찌른다. 혹시 아이들이 쓰는 말로, 혹시 그가 '관종'이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백기자는 이런 말까지 한다. "그가 자신이 속한 진영보다, 그 진영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보다, '나의 양심'을 맨 앞자리에 놓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주장도 한다. "진보 진영의 논객 중에는 자신이 좇는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잡힌 인물이 여럿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눈 앞의 현상과 팩트를 먼저 바라보기보다, 자신이 이미 틀어쥐고 있는 이념의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중권과 7년 전에 한 인터뷰를 기사로 내놓았다. 말이 되는가?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많이 변하는데……
그가 '사기꾼' 총장이 있는 동양대학교에서 그동안 왜 자신이 근무하던 대학에 대해 "까칠한 비판과 냉정한 반박"(백성호 기자)을 하지 않고, 그 대학의 정체가 드러나니까 사표를 쓰고 나타나 모든 사람에 집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그와 상대를 하지 말라는 현역 국회의원의 하소연을 패북에 포스팅했을까? 그 현역 의원은 김상희라는 분이다. 그리고 몇 일전에는 이종걸 의원의 긴 글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백기자가 올린 7년 전의 인터뷰를 그냥 묵묵히 읽었다. 처음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예술의 기능은 주술이다. 아직 오직 않은 미래를 예술을 통해 미리 보는 것이다." 예술의 한 영역일 뿐이라고 나는 본다. 그럼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왜 예술을 좋아하나"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도, 성격도 불완전하다. 수시로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절망한다. 이런 것들이 다 상처로 남는다. 그럴 때 예술이 종종 돌파구가 된다." 이런 주장 속에서 나는 그리 높지 않은 사유의 시선을 보았다. 그러나 7년 인터뷰에서 했던 그의 주장들을 좀 정리해 보았다.
▪ 예술의 기능은 원래는 주술이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주술인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담는 거다. 그러니까 이상을 담는 거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술을 통해 미리 보는 거다.
▪ 우리는 왜 예술을 좋아하나?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도, 성격도 불완전하다. 수시로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절망한다. 이런 것들이 다 상처로 남는다. 그럴 때 예술이 종종 돌파구가 된다. 예술은 굉장히 자유롭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며 거기에 담긴 자유를 동경하고 갈망한다. 지금은 허락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허락될 자유를 미리 맛보는 거다. 그것 자체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
▪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회주의가 오고, 공산주의가 오고, 해방된 세상이 와도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고(苦)이다. 상처는 두 가지가 있다. 사회적 상처와 고독한 존재라는 개인적 상처. 전자는 사회적 해법으로 풀고, 후자는 예술과 철학이 도움이 된다. 계속 진중권이 했던 말이다.
▪ 그는 『파우스트』를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말하였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게 마련이다." 이 문장을 만난 후, "실수를 많이 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그게 두려워서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실수하는 건 내가 노력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걸 그는 '마주침의 순간'이라 명명했다. 그러면서, 예술을 통한 치유는 늘 그런 '마주침의 순간'에 일어난다고 했다.
▪ 그는 삶 자체를 '놀이'로 본다고 했다. 삶을 놀이로 보면, "적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이라 해도 인생이라는 게임 상대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럼 잔혹함이 덜어진다고 한다. 누군가 계속 걸고 넘어지지만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악플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모든 걸 놀이로 본다는 것이다, 삶도, 정치도 게임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뭐 하러 목숨까지 거느냐는 것이다. '넌 나쁜 놈이야'하는 도덕적 코드보다 '넌 웃기는 놈이야'하는 미학적 코드로 가자는 것이다. 이 말은 흥미롭다. 삶을 놀이로, 유희로, 예술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애 다 적용되는 아니라고 본다.
▪ 누가 진짜 인생의 '위너'일까? 그에 의하면, 주위를 들러 보면 다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삶의 '위너'일까? 그에 의하면, 자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핵심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그럼 행복해지니까. 행복한 사람이 삶의 워너이기 때문이다.
▪ 행복은 어디에 있나? 행복해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설정해 놓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내게 이미 있는 걸 통해서 찾으면 쉽다.
이렇게 그의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 생각난다. 선과 악을 경직되게 구분하기보다, 나는 다 정도의 문제로 보고 싶다. 그러면서, 나 또한 진중권을 편견과 선입견으로 보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다. '찌르는' 사람은 싫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 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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