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임마뉴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란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지구경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그걸 읽고 써보았다.
교수가 되거나 유명대학 근무가 지식인에게 목표가 될 수 없다.
지식인은 그동안 받은 것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급변하는 위기의 세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치 못한 것은 작금의 한국 교육문법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극도의 위기와 지속가능한 기회가 공존한다.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시기이다.
급속한 기술적 진화가 우리 사회와 지역, 국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관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야 할 예술과 문학은
소비와 즉각 만족을 예찬할 정도로 타락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의 순위를 바꾸고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의 대학은 심각한 위기이다.
학생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거나 이웃을 돕거나 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해 관심도 없고,
어떤 영감도 주지 못하는 과목들을 공부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교육이 직업에 필요한 자격증으로 전락했다.
슬픈 현실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쌓은 지혜와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교육은 세계를 이해하거나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윤리적인 역할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서로 평생 갈 수 있는 우정를 친구끼리다지거나,
교수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서로 소외되고 스마트폰의 가상 세계에 빠져 있다.
대학이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의 공간이다.
교수도 지식공동체를 만들기보다는 서로 경쟁만 한다.
교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이다.
논믄을 SSCI저널에 게재하는 것이다.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저널이란 따분하다.
전문가들만 아는 용어로 가득 찬 학술지는 몇몇 학자들이 편집한다.
이러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우리 사회에 실제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수이기 이전에 지식인의 의무는
일반 시민에게도 이야기를 해야 하고,
제자들과 학생들이 이 시대의 위기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게 윤리적 의무이다.
기후변화, 빈부격차,
핵 전쟁의 위협,
사회적 가치의 퇴락
그리고 환상이 아니라 굳건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사고방식의 전환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학의 본질이 바뀌었다.
교수의 역할은 미래를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거나 학생들에게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어 한다.
학점을 주고,
추천서를 써 주고,
아무도 읽지 않는 전문학술지에 기고하는 것이 교수로서의 목적이 되어버린 이 현실이 슬프다.
학생들에게 경제교환의 윤리적,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수학적으로 물가 상승과 이자율을 계산하는 방법만 가르친다.
대학생들, 지식인들, 모든 사람이 우리 시대의 주요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무언가를 해야 한다.
더 이상 대중 매체에 의해 조작되고 비디오 게임에 의해 왜곡된 수동적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 삶이 윤리적인 삶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매일 그러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있게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적극적인 시민이 되어야하고,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
위대한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구경영, 홍익에서 답을 찾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말한다.
동북아시아 청년들이 만나야 한다.
지구의 위대한 개인, 지구 시민의 정신으로, 인간 사랑, 지구 사랑의 대의로 만나,
토론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별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지구 환경의 문제, 인간성 상실의 문제 등 세계 전반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고,
그 해결책으로 지구 시민정신과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국학,
인간의 뇌를 활용하여 인성과 창의성을 회복하는 뇌교육.
지구평화와 환경을 위한 지구경영학,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인 학문을 하여야 한다.
인류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시대의 가장 주요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지금 교육문법은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필요한 것에만 맞춰져 있다.
새로운 교육문법은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을 하나의 가공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학생들, 동료 연구자들은 평생 함께 일할 소중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제품이나 수입원이 아니어야 한다.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주주를 위한 돈벌이 대상이거나,
자금을 대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위기의 지구를 구하는 일에 진정한 용기를 내서 나기야 한다.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지 마라. 평범한 기회를 잡아서 위대하게 만들어라" (오리슨 마든)
우리 75억의 인류는 역사적으로 최초로,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까지 서로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초연결시대이다. 전례 없는 기술발달과 기후변화의 진행으로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류의 생존 여부는 지금 바로 협력하고, 공통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다 공정한 사회와 정이 넘치는 사회
그리고 단기적인 열광이 아니라 장기적인 필요에 중점을 둔 협력과 공조의 문화를 위해 연구를 해야 한다.
보다 영적인 깨달음의 문화도 연구를 해야 한다.
너무 물질만능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정신문화도 키워야 한다.
우리는 현재 너무 자기파괴를 하고 있고,
게다가 우리 행동의 결과를 병적일 정도로 보지 못하고 있다.
필요치 않은 상품을 만드느라 목재를 남발하여 숲을 파괴하거나,
잘 먹지도 않는 생선을 값싸게 공급하느라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우리의 뇌와 우리의 습관과 충동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미래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지구반대편이나 세계 사람들,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소비할 수 있다는 그런 광고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 소비문화가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는 문화를 없애 버렸고,
우리는 유명세, 등급, 수입과 규모로 가치를 매기고 있다.
미래는 초현대적 스마트시티가 아니다.
실행가능한 미래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전통적 문화.
오랜 기간동안 검증된 문화속에 있는 요소들을 재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고전을 연구하고 많이 읽어 현대적 삶에 적용 가능한 것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성장과 소비의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한다.
친절, 겸손, 절제와 인내는 가치에서 밀려나 있다.
이것을 되집어야 한다.
이런 가치의 우선 순위를 바로잡고, 이러한 문화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
혁명이라는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너무 피상적으로 사용한다.
혁명은 아주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용어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혁명이란 쉽게 통제불능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쉬타인이 말했다. "혁명이 언제 끝날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혁명의 '혁'자는 갑골문에서 소의 가죽을 정교하게 벗겨낸 뒤 뿔, 몸통 그리고 꼬리 부분이 남은 모양이다.
자신이 안주하던 소의 몸체에서 정교한 칼로 가죽을 베껴내야 한다.
특히 소가죽에 남아 있는 기름이나 털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그 가죽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질 수 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무두빌이라고 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차 없이 버리는 행위이다.
혁명, 무서운 말이다.
혁신이라는 말도 있는 데, 또한 무서운 말이다.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잔인한 일이다.
급속한 변화를 위해 혁명이 필요하지만,
혁명이 또 다른 권위주의가 되면 안 된다.
러시아혁명의 경우,
사람들을 신속하게 동원하기 위해서,
과거에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협력을 도모했던 과거의 전통을 해체하려고 했던한
급진적인 변화의 첫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스탈린과 같은 사람은 개인적인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혁명적인 사상을 이용했다.
지구 경영은 혁명이 아니다.
지구 경영이라는 말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감이 잘 안 온다. 글로컬=글로벌+로컬.
좋은 말이다. 지구적 시각과 지역적인 실천이 결합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좀 더 디테일하게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겸손과 절제와 절약,
생태계와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전통 문화 속에 있는 자산들의 재평가.
"한국은 교육을 되살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인문학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
우리가 현대적 이상향을 추구하려면 과거를 내팽개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과거에서 위대한 보물을 찾아야 한다.
과거는 지루하고 현대 사회에는 쓸모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홍익인간-모든 인간을 이롭게 하라.
이 말은 현대화의 장애가 아니다.
좀 더 정이 넘치는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거다.
현대사회는 너무 과학기술에 목숨건다.
과학기술은 역설적이다.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또한 우리를 고립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과학기술이 우리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거나 지구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도 갖지 못한다.
TV나 게임 그리고 스마트폰이 드렇다.
과학기술을 관리해서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지구를 파괴하는 기술이라면, '"안돼!"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우리 문화에서 정직과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린 이제 세상과 긴밀하게 교류하기 위해, 과학기술에서 한 발 벗어나
우린 사람도 사귀고, 책도 읽고, 산책도 나가야 한다.
한국의 교육 문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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