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영목 시인을 우리는 '바람 시인'이라 한다. 바람 피는 시인이 아니라, 그의 시 속에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나는 유학 시절에 바람부는 날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바람이 나를 내 고향, 한국으로 데려 다 주겠지 하며, 그 바람을 따라 허공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이 그렇게 해 준 적은 없다. 세월이 흘러도 그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어제 그 바람을 걸었다.
난, 허공으로 날다 부러진 화살같은 갈대였다. 시인은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갈대 속에서 보았지만, 난 나를 봤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던지 모르지만, 난 내 바람을 그 갈대 속에 넣었다. 왜냐하면 시의 마지막 문장처럼,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오늘 난 "갈대등본"에 또 한 줄 더 기록하고, 그 등본 한 통을 다시 가져오리라. 등본에 내 마음을 다 담고 싶다. 내 뼈 속에도 바람이 있다.
갈대 등본/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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