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쓴 글인데, 그 때 적폐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다.
본시 행복이란 나와 주변, 이웃, 나아가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론적 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사회적 행복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개별로만 존재하는 행복은 위태롭다. 정치는 물론 사회의 붕괴 조짐마저 느껴지는 이 ‘불행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애써 느끼는 ‘행복’은 섬처럼 고립된 행복이다. 실현되기 어렵고 지속되기는 더 어렵다. 그마저도 여력이 되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행복일 것이다.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의 행복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원인이 낮은 사회신뢰라는 결과다.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미 오래된 주제지만, 이제는 이웃도 믿지 못한다. 공동체는 머나먼 꿈일 뿐이다. 힘겨운 시대를 함께 버텨야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니 우리 사회가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넘어진 곳이 여기라면, 여기서 일어서야 한다.
파시즘은 정치상의 테러독재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정치체제다. 자기혐오와 상호혐오가 창궐하는 곳에서 파시즘은 쑥쑥 자란다. 파주는 오랫동안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시민적 공공성이 자라고 있다. 시민들은 아이들, 무고한 죽음 앞에서 혐오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 쪽으로 길을 잡았다. 동네 사람들 따위가 파시즘을 막을 수 있느냐고 냉소하지 마시길. 여기가 넘어진 곳이라면 여기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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