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0.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3월 18일)
시인들은 봄꽃 중 가장 크고 순백인지라, 목련을 시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제해만), "갑자기 바람 난 4월 봄비에 후두둑 날아오른 하얀 새떼의 비상" (김지나), "어두움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박주택),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 "흰 붕대를 풀고 있다."(손동연), 요즈음 젊은이들은 "팝콘처럼 피었다 바나나 껍질처럼 스러진다"고 말한다. 목련이 핀 모습을 두고 “흰 붕대를 풀고 있다”(손동연), “하늘궁전을 지어 놓았다”(문태준),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가 난다”(홍수희)거나, “빤스만 주렁주렁 널어놓고 흔적도 없네”(정병근)라는 시인도 있다. 김상현 시인의 <개화의 의미>는 압권이다. "‘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세상을 몰랐기에/때묻지 않은 청순한 얼굴 드러내 보임이요/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세상 절망했기 때문이요/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하기로 했다. 아프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 난 아침 8시에 무조건 나가 걷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자연과 가까워 어디든 가도 다 좋다. 어제는 주말이 아닌데, 우리들의 농장인 "예훈 농장"을 다녀왔다. 오던 길에 하늘에 떠 있는 오늘 아침의 목련 나무를 만났다. 김훈의 산문 집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문장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가 생각났다.
소설가 백영옥은 봄이 되면 김훈의 산문 집 『자전거 여행』 읽는다 한다. 그녀는 반복했기 때문에 어떤 문장을, 나처럼, 외울 수 있다 한다. 가령 위에서 말했던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거나 또는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같은 말은 이제 특정 꽃을 보면 소환되다 한다. 그녀에 의하면, 이런 기억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한다. 소설가의 말을 직접 공유한다.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고 괴로울 때, 암송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부쩍 지치거나 눈가의 주름이 유난히 깊어 보일 때, 내가 비타민처럼 섭취하는 문장이 있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날이다. 자신만의 좋은 문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자다. 나만의 문장은 안전지대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길 권한다. 그러면 동네를 재발견 할 수 있다. 목련을 보려 멀리 갈 필요 없다. 우리 주변에 의외로 목련들이 널려 있다. 계속되는 코로나-19로 봄 다운 봄이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의 봄도 작년과 같이 사뭇 다르다. 반면, 나는 이름난 봄꽃 명소로 향하지 못한 발걸음이 머문 동네에서 해마다 그 자리를 지켰을 봄의 풍경을 만난다. 동네 골목길 어귀, 여염집 담벼락에 활짝 핀 꽃들은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기운을 알리고 있다. 이는 마치 ‘숨은 그림찾기’와도 같아서 눈 밝은 누군가는 감탄하고, 어떤 이는 미처 보지 못한 채 지나친다. 양손에 든 무거운 짐에 온통 신경이 쓰이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길을 걷는 동안 놓쳐버린다. 나는 아침마다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풍광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찬란한 이 순간들을 사진으로 모은다. 오늘 아침 시는 류시화 시인의 <목련>을 공유한다. 특히 이 부분이 오늘 아침 사진과 어울린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목련/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 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 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오늘 아침 인문적 사유는 고진하 목사님이 말씀하셨다는 "삶의 불편을 수용하면 삶이 편해지더라"는 말이다. 고목사님은 70년 된 시골 한옥에서 대문에 <불편당(不便堂, 불편한 집)>이라 걸고 13년째 사신다고 한다. 자택의 벽에는 "불편을 즐긴다"와 "신들린 잡초 밥상"이란 글귀를 걸어 두었다 한다. 불편을 받아들이고 살자는 것이다. 그러면 불편도 익숙해진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의 우리 집도 그랬다. 그분의 이야기들 중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공유한다.
# 사실 우리 시대는 너무 편리를 추구한다. 대자연을 가만히 보면 풀이나 새나 벌레들은 인간처럼 편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아무리 불편한 일도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좋은 예를 들어준다. 봄이 되면 자기가 사는 집으로 제비가 날아온다고 한다. 삼월 삼짇날이면 어김없이 암수 한 쌍 제비가 찾아와, 처마 아래 둥지를 지은 뒤,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고 한다. 세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좁아서 암수 모두가 둥지에 들어가 없으면, 수컷은 둥지 옆에 박혀 있는 못대가리 위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다른 생물들은 인간처럼 편리를 추구하지 않고, 불편도 즐기면서 산다는 것이다.
# 그는 매일 저녁 아궁이 불을 지피고 산다 한다. 땔감은 주로 참나무를 쓰는데, 아궁에 불을 지피면 참나무 장작은 자기 에너지를 다 쓴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걸 태운다. 그걸 통해 자신의 몸을 데워주는 것을 보고, 그는 참나무처럼 살자고 다짐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모두 태우는 참나무 장작처럼,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다 쓰고 살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까. (…) 그렇게 다 써도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니까"라 말씀 하시며, 참나무에게 경배를 한다고 하셨다.
# 그가 지구 위의 존재 중 경배를 바치고 싶은 대상이 둘이라 한다. 하나는 참나무이고, 2호는 지렁이라 한다. 지렁이는 분변토를 토해내는 데, 그 덕분에 땅이 옥토가 된다 한다. 일체 비료를 안 써도 작물이 병들지 않고 잘 자란다 한다. 이런 식으로 지렁이가 지구의 식물과 우리에게 살아가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일종의 다른 생명에 대한 경배이다.
고 목사님이 살고 있는 한옥의 묘미는 '틈'이라고 한다. 나도 이 말을 좋아한다. 목사님의 다음 말씀이 삶의 한 지혜를 깨우쳐 준다. "나는 이제 완전함을 추구하지 않고, 원만함을 추구한다. 완전함을 좇는 사람은 틈이 생길 때마다 메워야 한다. 그런데 틈을 수용하니까 원만함이 생기더라. 이제는 틈을 그냥 두고 즐기려 한다." 한옥은 주로 흙과 나무가 재료이다. 그래서 곳곳에 구멍이 생긴다. 벽에도, 처마에도, 담에도 셍긴다. 고 목사님은 그 구멍을 "생명의 꽃자리"라 부른다. 그는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냥 둔다고 한다. 그러면 그 구멍으로 온갖 생명체가 오간다고 한다. 사실 살아 있는 것들과 같이 지내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애틋한 연민으로 보살피면 기쁨을 줄 때도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블레스 오블리제' (0) | 2021.03.19 |
---|---|
우리가 물이 되어 (0) | 2021.03.19 |
<니버의 기도> (0) | 2021.03.18 |
다른 이에게 생명을 주는 하루가 되도록 "서 있고" 싶다. (0) | 2021.03.18 |
'積後之功(적후지공)' (0) | 2021.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