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11일)

오늘이 <제9회 아시아와인 트로피 2021> 마지막 4일 째 심사를 마치었다. 하루 약 60 여 병의 와인을 평가한다. 저녁에는 매 번 만찬이 있어, <인문 일기>를 쓸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 오후부터 밀린 것을 다 채운다. 어제 저녁에는 대전의 자랑인 대청호변에 있는 곳에 가서 와인과 함께 하는 저녁 모임을 마치고 들어 왔다. 오늘과 내일은 좀 쉬고, 이 번 토요일에는 우리 나라 전통주 심사 위원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국가대표 소믈리에 선발대회와 함께 올해에 특별히 만든 <대전 시민 소믈리에 대회>의 심사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원래 하루에 한가지 씩만 일 하려고 했는데, 이 번 한주는 너무 바빠서 생활의 리듬이 무너졌다. 나는 리듬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리듬을 되찾으려면, 다시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할 때, 나는 다음의 8자를 소환한다. <<주역>>에 나오는 관어천문 찰어지리(觀於天文, 察於地理)이다. 이게 '생생의 이치'이다. 이 말을 줄이면 '관찰(觀察)'이다. 이 말은 천문을 보고, 지리를 살핀다는 말이다.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일차적으로 관찰을 통해서 습득한다. 안다는 것은 이 관찰에 의해서 형성된 그 무엇이다. 관찰은 인간이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이며,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초석이다.
한문으로 관찰의 낱말 풀이를 해 본다. 관(觀)은 황새(雚)가 큰 눈을 뜨고 본다(見)이다. 또는 황새가 하늘에 날아 올라 세상을 크게 본다는 뜻으로 객관적인 세상을 크게 조망해 본다는 의미가 있다. 찰(察)은 집(宗)에서 제사(祭)를 올리며 신의 뜻을 알아낸다는 뜻으로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사물과 상황의 진의를 파악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관'은 하늘을 보며 세상을 크게 조망하는 것이고, '찰'은 땅을 굽어 보며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관찰은 큰 흐름의 줄기를 보고, 세부적인 일의 정황을 파악한다는 두 가지 방법이 동시에 수반되는 것이다. 큰 흐름만 보고 세부적인 정황에 대한 살핌이 없으면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될 것이고, 세부적인 정황만 살피고 큰 흐름을 보지 못하면 그 정황의 정확한 주소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도 리듬이 중요하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을 만난다. 세상은 도(道)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신령한 기물(天下神器)이다. 제29장에 나온다. “세상은 신성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자는 그것을 망칠 것이고, 그것을 휘잡으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상은 신령하니까. 다시 말하면,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원리와 리듬이 내재해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깊고 높은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할 때 제발 경외(敬畏)의 태도로 대할 줄 알라는 이야기이다. 난 경외(敬畏)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다. ‘외경’이라고도 한다. 두려워 할 ‘외’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경외'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좀 두려워 하면서 만나야 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관찰이라는 것은 단지 객관적인 세상을 보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인 대상으로 던져 놓고, 던져진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도 관찰이다. 모든 현상과 존재를 관찰하는 데, 우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 다음 큰 흐름을 보고, 세부적인 정황을 살펴 본다.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한다.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그 무엇을 또한 관찰한다. 그러면 리듬을 되찾고 잘 유지할 수 있다.
오늘은 언젠가 내가 써 둔 시를 공유한다. 리듬을 되찾고 싶다. 오늘 사진은 와인 심사를 하고, 호텔에서 저녁 만찬 전에 휴식을 취하면서 창밖의 대전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리듬을 타세요/박수소리
글쓰기든,
사는 것이든,
리듬이 중요하지.
리듬이 먼저 있고,
난 그 리듬에 실려 간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 갈 때도
리듬만 타면 잘 내려간다.
딴 생각 않고,
리듬만 타면 잘 내려간다.
엘리베이터에 한 발만 내디디면 그냥,
올라가는 것과 같다.
글쓰기에선 산문이 리듬 타면 그게,
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리듬 타면,
그건 춤이다.
그래서 춤꾼은 이런 말을 한다.
춤을 출 때 생각하는 것은
댄서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다.
춤을 출 땐,
춤을 느껴야 한다.
리듬으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사는 사람과 리듬이 안 맞으면,
친한 사람과 같이 걸어도 리듬이 안 맞으면,
힘들다.
모든 공부는 파도타기처럼
리듬을 배우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은 리듬에 맞춰 세상과 편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 지내는 것이다. '잘'이 영어로 'Well'이고, 잘 지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걸 영어로 말하면 'Being'이다. 합쳐서 'Well-Being'이 세상과 편하게 지내며 존재하는 것이다. 사는 것이나, 스포츠 경기를 하면서, 악을 쓰고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의 힘에 따라 활발하고 신나는 리듬에 따라 조화와 통일감을 보여주면서, 가볍고 편안하게 멋진 경기를 펼치는 선수가 우아한 것처럼, 사는 것도 편안하여야 한다. 이걸 일본인들이 만든 말로 '안녕(安寧)'이다.
원래 사람들은 반복을 싫어한다. 반복이 지루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지루함의 대명사인 '반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슷한 음이 반복될 때 리듬이 만들어진다. 반복된 것들 속에서 멜로디가 탄생한다. 난 삶의 리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듬이 살이 있으면 삶이 더 풍요롭고 하는 일이 더 쉽다. 규칙적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고루하고 무거운 느낌만 벗어난다면 반복이 삶에 주는 풍요로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반복을 지루함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리듬으로 인식하는 사람의 삶은 같지 않다. "저는 제 삶을 간결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의사결정만 하고 싶어요." (저커버그)
규칙적인 이유는 선택의 피로를 줄이고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자신의 뇌를 더 창조적인 데 사용하려는 것이다. 삶이 단순하고 규칙적이어서 뇌가 선택이라는 값비싼 에너지를 많이 쓸 필요가 없어질 때, 우리의 뇌는 뜻밖의 일을 한다. 가령, 비슷한 것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늘 걷는 길 위에 핀 민들레를 발견하고, 지하철 안 광고 문구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채집한다. 생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에피큐리안'을 쾌락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은 순간의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의 평정심이다. 행복이 쾌락이 아니라, 평온함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롤러코스트 타는 듯한 변화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의 파문 같은 변화에 민감해질 때, 우리는 세상 많은 것에 귀 기울여 응답할 수 있다. 모처럼 평온을 되찾은 저녁이다. 그래 내일부터는 하루 한 가지 일만 하고, 리듬을 되찾을 거다.
지난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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