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9일)

대전 갑천은 물론 저 멀리 원도심까지 말 그대로의 대전(大田)이 다 내려다 보이는 34층의 호텔 오노마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Asia wine trophy 2021에 Juror로 참석 중이다. 이름이 좀 생소한 오노마(Onoma) 호텔의 오노마는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이름'과 '명성'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것과 구분,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존재 자체의 호칭'을 의미 한다. 사실 '이름' 안에 그 존재의 성질, 가치, 능력,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 더 깊이 알아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어제 저녁에 호텔 방에서 찍은 우리동네 갑천의 모습이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오노마'라는 네이밍이 좋다. '오노마'는 신세계 백화점의 첫 화장품 브랜드이기도 하다. 첫 인상으로는 일본어가 연상된다. 오늘은 심사 2일 차이다. 네 옆에서 심사하시는 분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신부님이시다.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섞어서 소통한다. 파리 유학 시절에 파리 외방전교회 기숙사에 묶었던 적이 있다. 지금 한국에는 12분이 계시다고 한다.
날이 점점 밝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는 오늘 아침 시에서 그 "눈짓"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화났을 때도 상대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꿨어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임스 L 부룩스) 우리가 누구를 만난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전 보다 좀 더 성장한 나를 만나게 해준다. 나 또한 그 사람이 전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와인이 숙성될수록 좀 더 나아지는 것처럼, 삶도 나이를 먹을 수록 성숙해지게 하여야 한다. 사는 것은 '한 방', '대박'이 아니다. 점진적으로 익어가는 것이다. 만날수록 삶을 더 즐겁게, 더 만족스럽게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가 당신 때문에 인생이 더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침에 위로를 받는 한 문장을 페이스 북의 한 담벼락에서 만났다. "인생의 10%는 내게 일어나는 일로 결정되지만, 나머지 90%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스티븐 코비) 오늘도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대응하는 것과 반응하는 것은 다르다. 반응한다는 것은 다소 본능적인 대처를 말한다. 반응인 아닌 대응을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응수하는 건 누구나 하는 조건반사에 불과하다
(1) 우선 침착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일단 참는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훈련이다. 충분한 숙고를 통해 안정된 상태에서 대응해야 한다. 평정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대응을 잘 할 줄 아는 인재가 더 돋보인다.
(2) 방향을 바꾸어 주도권을 가져온다. 나 만의 언어로 주도할 수 있게 단호하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3) 대응하는 패턴의 삶을 바꾼 후 달라진 결과 즐긴다. 겉으로 보아 모양이 빠져도 실속을 챙기는 건 이런 대응을 잘 하는 사람이다.
저녁에는 와인 심사 첫날 밤으로 환영 만찬 파티가 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아시아와인트로피>가 벌써 9년이 흘렀다. 심사 위원들 중에는 9년을 한 번도 빠지 않고 참석하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들이 잘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사는 ‘사랑하다’와 다른 사람을 ‘돕다’ 같다. 자신에 대한 염려에 앞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한다. 마치 잘 ‘숙성된 인간 와인’같다. 자기 밖에 모른다면 아직 인간이 덜 된 것이다. 덜 익은 와인처럼 말이다. 오늘도 잘 숙성된 와인을 많이 만나길 기원한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이 되길 빌면서, 구약성경 <창세기> 3장 6절을 소환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는 인류가 음식의 유혹에 빠져, 영적인 존재에서 육체적인 존재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 차려진 음식이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최상의 요리이며,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움을 줄 정도로 아름답고 자극적이고, 심지어는 그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 정도로 이상적이다. 그런 음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누가 그걸 거부하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음식에 관한 히브리어의 3 형용사를 주목한다. 이런 태도로 와인 심사를 할 생각이다.
▫ "음식으로 좋고"(인터넷으로 찾은 성서에는 "본즉 먹음직도 하고"): '좋다'라는 히브리어는 '토브'라고 한다. 그 말은 후각과 관련된다고 한다. '토브'는 '향기로운, 코를 통해 침샘을 자극하는'이란 의미라 한다. 실제로 좋은 와인은 향기가 좋은 와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저녁 무렵 어느 식당 앞을 지나가면, 음식의 향에 자극을 받는다. 음식이 실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향으로 무슨 요리인 줄 알기도 한다. 중국집의 짜장면 향은 지금도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도 그 향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토브'는 '최상급'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파라다이스(낙원, 에덴 동산)에서 만들어진 최상급 음식은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지녔을 것이다.
▫ "눈에 즐거움을 주고"("보암직도 하고")에서 '즐겁다'의 히브리어는 '타아바'라고 한다. 이 단어는 시각을 자극하는 단어라 한다. 눈에 쾌락을 줄 정도로, 음식을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때 사용하는 말이란다. 와인도 향을 맡은 후, 마시기 전에 색깔을 감상한다.
▫ "이상적이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네흐마"란다. 이 말은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단어란다. 아마도 그 음식은 몸에 좋은 유기농 재료로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이상적이란 말을 한 것 같다. 우리가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하는 것도, 소주가 '만든' 술이라면, 와인은 '빚은' 술로 포도 이외에 이물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천연 음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와인 심사를 첫날을 보내고, 두 번째날을 맞이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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