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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처염상정(더러운 곳에 머물더라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을 꿈꾼다.

더러운 곳에 처해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한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군자는 더러운 곳에 있더라도 그 본성을 물들이지 않는다.

<<중용>>의 제1장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를 외워본다. 잘 사는 길은 늘 하늘이 내린 본성을 깨어서 따르는 것이 도, 즉 인간의 길이라고는 것을 알고, 그 도를 닦는 것이 공부이니, 늘 공부하라는 말이다.

처염상정하면, 떠오르는 것이 연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좌대를 연꽃 모양으로 수놓는데, 이를 '연화좌'라 한다.

연꽃은 진흙, 즉 사바세계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즉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꽃송이가 크지만 몇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심을 향하여 겹겹이 붙어있어 형성된 모습이 불상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연꽃의 씨는 오랜 세월 지나도 썩지 않고 보존되다가 발아에 적당한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트기도 하여 불생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보통은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데,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혀 '화과동시'라고 한다. 이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야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우며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것 자체가 바로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연꽃이 전하는 메시지란다.

연꽃은 3일동안 핀다고 한다. 첫 날은 절반만 피어서 오전 중에 오므라든다. 이틀째 활짝 피어나는데, 그때 가장 화려한 모습과 아름다운 향기를 피어낸다고 한다. 3일째는 꽃잎이 오전중에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점 때문에 연꽃은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꽃인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연꽃이 '향, 결, 청, 정'의 네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번뇌와 고통과 더러움으로 뒤덮여 있는 사바세계에서도 고결하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보살을 연꽃의 속성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연화복', 또는 '연화의'라고 하는 것이다. 세속의 풍진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지킨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연꽃이 진흙 속에서 꽃이 피는 모습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이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주변을 탓하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의 꽃이다.

'불여악구'란 말를 나는 좋아한다. 물방울이 연꽃에 닿아도 그대로 물방울은 굴러 떨어진다. 즉 주변의 어떠한 안좋은 조건에도 물들지 않는 이의 모습이 연꽃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악과 먼 사람, 악이 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를 연꽃의 불여악구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처염상정, 오늘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인의예지'와 '6바라밀'을 실천하며 맑은  본성을 따라 살고 싶다.

성리학이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 구분하는것처럼, 나는 우리의 마음은 '참나'와 '에고'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둘 다 '나'이다.  '참나=성''은 시간과 공간이 없고,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계로 순수하고 완전무결하다. 반면 '에고=정'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표현되는 현상계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하고, '호리피해(자신의 익이만을 우선으로 한다. 즉 이익은 좋아하고 손해는 피한다는 말이다.)의 이치에 따라 나와 남이 구별된다.

영적 성숙, 즉 영성지능을 높이려면 참나가 에고 속에, '성'이 '정'에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희노애락의 에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용>에서 말하는 중과 화(=균형과 조화)로 잘 참나(=성)를 잘 경영하여야 하는 것이다.

잘 사는길은 늘 공부하여, 에고=정의 희노애락을 조절해가며, 즐겁고 행복하게 자연처럼 살다 가는 것이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없이 비워버린다"(.정호승, <상처가 스승이다.> 중에서)

버릴 때는 버려야 산다. 연잎에서 배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도무지 모르고 어물쩡거리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민망스러운가!" (이외수)

"가야할 때가 언젠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어제 동네 한밭 수목원에 들려 가을과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