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월/이문재
투명해 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 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 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어제는 늘 다니던 산책길의 코스를 바꾸었다. 거기서 만난 은행나무이다. 주변이 심란해서 일렬로 선 은행 나무를 찍기 보다는 가을 맑은 햇빛이 잘 든 나무 하나를 선택했다. 오늘 글쓰기는 시부터 공유한다. 오늘 아침은 10월 마지막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날씨도 이젠 제법 쌀쌀하다. 거리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위키백과에게 '중력'을 물아 보았다. 중력(重力, gravity)은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이 중력 때문에 우리가 둥근 지구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데, 그 힘은 각 물체의 질량과 비례하며,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가을 잎이 날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중력을 생각한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문운동가에게는 '자중(自重)하다'는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 말은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신중(愼重)하게 한다'는 뜻이다. 중(重)이 무게라는 말이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지구의 중력과 함께하며 낮게 깔려가며 무겁게 흘러가는 것 같이 말이다. 반대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가벼움으로 흩어지는 것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경솔하다'고 말한다. 사전에서 경솔(輕率)은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 없이 가벼운 것'을 말한다.
'자중하다'라는 말에는 '자기를 소중히 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경솔한 행동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가볍게 날리면 안 된다. 자기 규칙이 있어야 한다. 난 술의 유혹에 너무 약하다. 술에 취하면, 난 내 몸과 마음이, 가볍게 흔들리는 깃발처럼, 펄럭거린다. 그것이 영혼의 자유는 아니다. 자유는 고통스럽고 힘든 뒤에 찾아온다. 김수영의 <푸르는 하늘을>이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희생을 치르지 않은 자유는 무의미하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부러워하는/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사람이 '자중'하지 못하면, 중후하고 찰 진 토양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푸석푸석해져 풀풀 표류하게 된다. 와인도 그렇다. 목구멍을 낮게 미끄러져 가는 와인이 있다면, 풀풀 날리는 푸석푸석한 와인이 있다. 찰 지지 못하다고 한다. 밥도 그렇다. 찰 진 밥과 날리는 밥이 있다. 나는 그런 와인과 밥을 날린다고 표현한다. '날라리'도 이런 의미인가? 갑자기 영감이 지나간다.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른 말'이 '날라리'이다. 이 '날라리'도 찰 지지 못하고, 푸석푸석 나르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오늘도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풀 바디' 와인처럼, 날리지 않도록 하고 싶다. 그러니까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할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이라 그런지 불안하고 초조하다. 갈 날이 생각되어서, 그러면서도 이룬 것 별로 없어서, 아직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 같다.
그러던 중 나를 위로하는 글을 만났다. 2년 전 페이스 북에 업로드했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위학일익(僞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도덕경> 48장).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급증을 덜어내고 싶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중하며 일상을 행복하게 향유하고 싶다.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시작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졌고 지금껏 우리들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 십분 발현되기도 하고 발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을 통한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국민의식을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행복하기 위해 거창한 무언 가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남 보란 듯이' 살지도 않는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한다. 남보다 빨리 갈 필요도 없다. 조금 느릴지라도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삶, 경쟁에 밀릴까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알면서 가을이라, 거리가 붉게 물들어 낯설기 때문인가, 아니면 낙엽이 지면서 나무들이 내 머리 숱이 적어지는 것처럼 듬성듬성해 져서 그런지 불안하고 두렵다.
아침에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힐링 인문학이 아니라, 피부를 박피(薄皮)하는 것처럼, '이상한' 현실의 이면을 보기 위해 필링(peeling) 하는 인문학을 이야기 했지만, 마음이 찝찝하다. 벗기고 나면, 그 현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약일까?
그래 오늘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쓰면서 길을 찾는다.
다른 날의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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